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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륜지대사

by 이영희


그래,

간소하게 하자고

계란 물 풀고

부침가루 개고

동태

동그랑땡

배추 전

두부를 부치고

조기 똑똑한 놈 세 마리

혼자 장만하는 손길이 바쁘다

도라지, 고사리 볶고

숙주에 시금치 데치고

이번엔 닭대신 계란 삶고

밤, 대추,

곶감, 사과, 배...

북어포에

탕국은 좀 큰 솥에 끓이고

아들과 며느리

퇴근하고 들어서네

제사 날은 나 혼자 하기로

서로 약속했다

설명절과 추석엔 연휴가 되니

며느리가

전과 생선을 맡아서 해 온다

함께 상을 차리고

우리 네 식구 향을 피워

큰절 올리고, 음복주 나누네

교자상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간단하게 한다 해도

장을 보고 손질하는 마음은

이미 조상님 은덕에 다가가는...

어찌 허투루 기운을 다스릴까

적든 많든

정갈하게 정성스레

.

.

내일이 어머니, 아버님

결혼기념일이라며

예쁜 케이크를 사들고 온 며느리

고운 마음에 맛도 두 배

그렇게 어제가 지나갔다

.

.

오늘이 결혼 44주년

이젠 서로 뒤섞여

너를 닮은 남자

너를 닮은 여자

인륜지대사가 어찌 결혼 뿐이랴

죽은 날도 그러하니...

.

.

아크릴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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