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태어났으면

by 이영희

현명한 사람은 처세에 있어

중용을 가장 귀하게 친다

유유자적 한가롭게

道안에서 상종하는구나

수양*의 처신은 졸렬했고

유하혜*는 참으로 교묘하였지

배불리 먹고 팔자걸음 걸으며

벼슬로 힘든 농사 대신했구나

은거를 핑계 삼아 세상을 희롱하고

행실이 시류에 어긋나도 화를 당하진 않았다.

재주가 고갈되면 목숨이 위태롭고

명성을 흠모하면 겉치레에 매이게 된다.

무리와 어울리면 번거로움 필할 수 없고

고독을 높이 치면 화목함을 잃게 되지.

남김이 있어 늘 모자라지 않도록 하고

자신의 의견은 가급적 적게 말하라.

성인의 도는 용처럼 뱀처럼

변화무쌍 끝이 없구나.

형체는 드러내도 정신은 감추어

만물과 더불어 변화하고 움직이라.

적당히 시류에 맞춰 흘러갈 뿐이니

변치 않는 도리란 있지 않은 법이다. / 동방삭의 <誡子詩>


** 수양 -- 산 이름. 일명 뇌 수산이라고도 한다.

백이와 숙제가 이곳에서 고사리를 뜯으며 은거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글에서는 응당 백이와 숙제를 말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유하혜-- 맹자가 이르기를,

“유하혜는 비루한 임금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벼슬을 낮게 여기지 않고, 벼슬에 나아가서는 자기의 어짊을 숨기지 않고 반드시 도리대로 하며, 임금에게 버림받아도 원망하지 않고, 곤궁하게 되어도 근심하지 않았으니, 유하혜는 성인의 화합하는 면을 갖춘 자이다.”


** 동방삭 -- 변화 다단하며 해학과 활달함이 넘친다. 임기응변의 재치를 보면 마치 배우 같고, 막힘없는 모습은 지혜로운 듯하며 바른말로 직감하는 모습을 보면 정직한 듯하고, 자신의 행실을 스스로 모욕할 때면 마치 은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이- 숙제는 틀렸고 유하혜는 옳다고 그 자식을 가르쳐서 보신하게 하는 <誡子詩>




여기에 글을 옮겨 적으며

오늘날의 백이와 숙제는 누구이며

유하혜는 누구이며

동방삭 같은 인물이 저기 청기와 집안에, 여의도 돔 속에도 있으려나.


며칠 전, 비 내리는 종묘를 산책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잔디는 잘 깎여져 있었다.

저기 곳곳의 왕릉과 현충원의 묘지 등을 떠올리며 이왕 태어났으면

나라에서 벌초해주는 그런 인물이 되면 영광이려나.

종묘의 잔디가 가지런한 것을 보며 그야말로 쓸데없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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