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가을볕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뜨고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자 오전 11시 몇 분이었다.
다행히 12시는 넘기지 않았다. 고작 1시간 차인데 이상하게도 12시가 넘어서 일어나면 하루를 잠으로 소비하고 말았다는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간단히 양치와 세수만 하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먼저 유튜브에 들어갔다. 구독 중인 채널에 새 영상이 올라왔는지 확인한 후, 어떤 음악을 들을지 골랐다. 대체로 연주곡 리스트를 찾아들었다. 최근에 듣고 마음에 든 '카뮈의 이방인' 리스트를 재생시키고 잠시 무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미뤄둔 번역을 할까. 잡다한 글을 써볼까. 책을 읽을까.
그런데 어째 오늘은 아침에도 계속 심장박동이 강하게 느껴진다.
잠이 부족해서일까.
책에도 글에도 영상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가만히 책장을 들여다보았다.
그림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책 읽는 곰)
책장을 넘기다 말을 더듬는 주인공이 발표할 차례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주인공 시점으로 바라본 반 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진 장면을 보고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못할 만큼 내성적이었다.
어쩌다 발표를 시키면 눈앞은 캄캄하고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나를 향한 수십 개의 얼굴들.
뭉개진 얼굴.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
다시 크게 말해보라는 선생님.
심장은 쿵쾅거리고 뱃속 장기에 진동이 일었다.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 번쯤 했다.
얼마 후 아이들은 흥미를 잃지만 선생님의 질문은 끝이 없다.
예, 아니오, 단답으로 몇 번이나 대답한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수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들어찬 머리.
또 발표를 시키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온몸을 웅크리고 하교 시간을 기다렸다.
마지막 수업 시간이 마치는 종이 울리면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릴까 서둘러 교실에서 나왔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발표나 여러 사람의 눈길을 끄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다.
발표를 망친 주인공을 데리러 온 아버지가 그런 날이면 강으로 데려가 산책을 하고, 위로를 해 주었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이는 가만히 강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관찰한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며 굽이치다가 부딪히는, 당당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를 자신의 가슴속에 새기는 주인공.
가만히 눈을 감고 강물을 헤엄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아이.
반짝이는 수면, 강물에 몸을 담근 아이의 뒷모습.
아름다운 그 장면이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
어린 나에게 이제야 위로를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도 강물처럼 말한다고.
그때 이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주인공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위로보다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도 강물처럼 말하고 잘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