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아사히 맥주 공장
혼자 후쿠오카에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화창한 하늘과 약간 서늘한 공기, 따뜻한 햇빛까지 완벽한 날씨였다.
낮술을 하기에.
나는 견학하기로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견학처럼 불특정 다수와 약속한 시간에 늦는 것을 특히 싫어했기 때문이다.
전철역에서부터 방향 안내가 있었기 때문에 길은 어렵지 않았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사진으로만 보았던 유명한 아사히 건물이 보였다. 반가웠다. 그러나 그곳이 입구는 아니었다. 견학자를 위한 입구는 그 건물 건너편에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로비의 안내 데스크로 가서 예약을 확인했다.
그러자 내 예약을 확인하던 직원이 예약한 시간 말고 조금 더 기다리면 한국어 견학이 가능한데 그 시간으로 바꾸겠냐고 물었다.
나는 싫다고 대답했고, 원래 예약한 시간에 견학을 하기로 했다.
2시가 되었다. 안내에 따라 공장을 견학했다. 극장 같은 곳에서 영상도 시청했다. 영상은 당연히 아사히의 역사, 술을 빚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물과 위스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아사히가 위스키도 생산을 하나 보군, 하는 생각 외엔.
영상이 끝났다. 사람들을 따라 다시 복도로 나갔다. 가이드를 뒤따랐다. 그때 가이드의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지금 이 시간은 위스키 시음이 포함된 회차라는 말이.
안타깝게도 나는 위스키를, 독주를 못 마신다.
그런데 사전에 그런 안내가 있었던가? 내가 확인을 제대로 안 한 걸까.
조금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가던 견학이 끝나고, 드디어 시음장으로 향했다.
목에 걸고 다닌 번호표와 같은 번호가 꽂힌 테이블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위스키가 놓여 있었다.
20분 동안 위스키 한 잔과 맥주 두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대각선으로 여자 한 명이 앉았다.
한국인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말을 걸까, 말까.
상대도 고민하는 건지, 그냥 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위스키가 담긴 잔을 입술에 갖다 댔다. 안 되겠다.
위스키 잔에 얼음을 받아 왔다.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위스키를 조금 희석시켰다. 그리고 다시 입술만 살짝 적셨다. 역시 위스키는 아직 힘들다.
잔을 옆으로 밀어 두고 맥주를 받아 왔다.
그래, 이 맛이지.
청량하다, 청량해.
앞에 놓인 스낵 봉지를 뜯었다.
소소하게 준비된 안주는 빨간 봉지에 든 과자였다. 조금 짭짤한 맛이 맥주와 잘 어울렸다.
두 번째 잔은 흑맥주로 받아왔다.
진하고 신선했다.
직접 생산하는 공장에 왔다는 기분 탓인지 맛이 훨씬 좋았다.
20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쉬운 마음에 시음장 한편에 마련된 기념품 가게를 구경했다.
안주로 주었던 빨간 봉지 과자도 팔았다.
살까? 아니야, 굳이 뭐하러.
나는 잠시 고민하다 빈손으로 공장을 나왔다.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두 팔을 휘적휘적 흔들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철로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도, 서늘한 공기도, 따뜻한 햇빛도 딱 좋았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벌써 빨간 봉지 과자를 잊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건 3년쯤 지난 뒤였다.
어느 날 늦은 저녁,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뭐해?"
"그냥 있는데...."
"야, 나랑 일본 갈래?"
"아니, 나 돈 없어."
"아직 시간 좀 있는데..., 얼리버드로 지금 비행기표 사면 왕복 20만 원도 안 해."
"나 지금 백수라 돈 없어. 아껴야 해."
"일본에 같이 갈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 같이 가자."
친구가 애원하듯 말했다. 마음이 약해졌다.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같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두 달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1월의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후쿠오카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아사히 공장도 다시 방문했다.
친구에게는 이미 빨간 봉지 과자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한 상태였다.
친구와 함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한국어 견학 시간을 골라 예약했다.
직원은 서툰 한국어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긴 설명과 공장 견학이 끝나고, 드디어 이 견학의 하이라이트인 시음 시간이 다가왔다.
역시 목에 걸린 번호표와 같은 번호가 꽂힌 테이블을 찾아가 앉았다.
직원은 마지막으로 캔 맥주 잘 따르는 법을 설명하며 시연해 주었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음 시간이다.
20분 동안 맥주 세 잔을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소소하게 준비된 안주가 그때 그 빨간 봉지 과자가 아니었다.
"아, 과자가 바뀌었네, 그 과자가 좋았는데...."
내가 조금 실망한 듯 말했다.
"나도 어떤 과잔지 궁금하네."
"아쉽군...."
"그때 그 과자가 무슨 과잔지 직원한테 물어봐."
"물어볼까."
"알지 않을까? 팔았었다며."
"응. 나 물어보고 올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념품 가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을 정리하고 있던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 저..., 혹시 예전에 안주로 주던 빨간 봉지 과자는 이제 없나요?"
"빨간 봉지요?"
"네...."
직원이 잠시 생각했다.
"그거 슈퍼에서 살 수 있어요."
"슈퍼요?"
"네, '옷똣또'라고 하는데...."
"오또또?"
"적어 줄게요."
직원이 어디선가 작은 메모지를 가져와 과자의 이름을 써 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한 뒤 메모지를 손에 쥐고 자리로 돌아왔다.
"뭐래?"
"'옷똣또'라고 슈퍼에 가면 살 수 있대."
"오, 진짜? 저녁에 슈퍼 가서 사면 되겠다."
우리는 그날 밤, 숙소 근처에 있는 큰 슈퍼에 갔다.
먼저 과자 코너에 가서 그 과자가 있는지 한 칸 한 칸 눈을 크게 뜨고 살폈다. 익숙하지 않은 제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보니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아..., 없나 봐."
하고 진열대를 돌아 뒤편으로 걸어갔다.
"이거 아냐?"
앞서 가던 친구가 돌아보며 말했다.
"아! 맞아!"
다섯 개씩 붙은 작은 봉지가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고리에서 세 줄을 뽑아 바구니에 담았다. 아쉽지만 세 줄 뿐이었다.
당장 오늘 마실 맥주도 사고, 선물할 술도 사고, 치킨 라면도 사고, 이런저런 것들을 잔뜩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숙소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친구에게 과자 맛을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맥주 마시기.
다음 날 저녁, 친구는 더 살 것이 있다며 혼자 슈퍼에 갔다. 나는 그날 유난히 피곤해서 먼저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한참 뒤, 슈퍼에 다녀온 친구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커다란 봉투에서 부스럭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게 건네며 말했다.
"선물이야."
바로 '옷똣또'였다. 무려 다섯 줄이나.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맙고, 반갑고, 웃겼기 때문이다.
친구의 선물은 곧장 캐리어로 들어갔다. '옷똣또'가 캐리어의 1/4을 차지했다.
이 옷똣또는, 캐리어 안에서는 좋은 에어 완충제가 되어 주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내 소중한 간식이자 안주가 되어 주었다.
엄마는 내가 없을 때 먹으면,
"내가 몰래 하나 먹었다."
하며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아껴먹던 이 과자가 다 떨어져 갈 때쯤, 친구가 다시 일본을 방문했다.
그리고 또 선물을 주었다.
다른 것도 많았지만, 역시 옷똣또를 빼놓지 않았다.
아마 열 줄이었던 것 같다.
큰 손 친구에게 고맙다고 절했다.
그리고 나는 옷똣또에 파묻혀 한참 동안 웃었다.
옷똣또란?
캐러멜로 유명한 일본의 모리나가 사에서 나온 고래밥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옅은 소금맛이고, 약간 짭짤한 맛 정도가 되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먹었던 고래밥과 가장 비슷한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과자와 비교하면 조금 심심한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