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이 보름이라지.”
“벌써 그리 됐나?”
“그러게, 얼른 정리하고 들어가세.”
“어-이!”
아직 팔지 못한 생선이 좌판 군데군데 보였지만 오늘 치 납품은 모두 끝낸 생선 가게 주인이 막 배달을 떠나는 심부름꾼을 향해 외쳤다.
“오늘은 이만 접어-.”
“이것까지만!”
심부름꾼은 묵직한 뭉텅이를 흔들며 웃음 띤 얼굴로 호탕하게 소리쳤다.
길고 긴 상가 끝에 위치한, 식료품을 파는 난장과 점포가 뒤섞인 저잣거리를 지나, 일용품과 주전부리 가게가 주를 이룬 중간 상가를 거쳐, 장신구와 박래품, 고급 식자재를 파는 고급 상가 너머에 있는, 고급요릿집으로 막 생선 배달을 가는 참이었다.
한쪽 어깨에 걸쳐 둔 반쯤 젖어 눅눅한 헝겊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표정을 숨기고 속으로 불평했다.
‘뭔 놈의 보름이 허구한 날 돌아와. 젠장, 또 반나절을 그냥 버리게 생겼네.‘
심부름꾼은 이리저리 사람들을 헤치며 성큼성큼 걸었다.
매달 보름만 되면 활력 넘치는 시중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더해졌다.
그중에서도 저잣거리에는 한층 더 소란이 일었다.
어디선가 ‘보름’이라는 단어만 들려도 어느 보름엔 누구네 집 누가 사라지고, 어느 보름엔 누구네 집 누구도 증발했다더라 하고 이 집 저 집을 들먹이며 너 나 할 것 없이 떠벌리기 바빴다.
어떤 이는 여기서 했던 말 저기서 또 하고, 다른 이는 여기서 들은 말 저기 가서 덧붙여 전했다.
“지난 보름에 조용했으니 이번엔 뭔 일이 나지 않겠어?”
아주 남의 일인 양 누군가 말을 던졌다.
그러자 이번 보름에는 백귀가 사람을 잡아갈 것 인가, 아닌가를 두고 한 무리가 침을 튀기며 논쟁을 벌이더니 어느새 내기가 시작되었다.
누가 장난 삼아 1 환을 걸자 너도나도 쌈짓돈을 걸기 시작했고, 1 환에서 2 환으로, 3 환이 4 환으로, 그러다 판돈은 10 환으로 불어났다.
판돈이 커지자 무리 속에 섞여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청년이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슬쩍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때 무리 앞을 지나는 한 여인이 그의 눈에 띄었다.
밤사이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지만 한낮의 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과 지면이 내뿜는 열로 상점이 즐비한 이 거리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이 저잣거리와 상점가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 중 무더위에 지쳐 비실대는 자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여인의 안색은 그들과 확연히 달랐다.
청년은 파리한 여인의 창백한 낯빛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눈으로 그녀를 좇았다.
‘제발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여인의 간절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응?’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사라진 청년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여인의 신상을 살폈다.
파리한 낯빛과 퀭한 두 눈, 바싹 메말라 가칠한 입술에는 생기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뒤로 묶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윤기 없는 머리칼은 버석함을 숨겨지지 못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함인지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함인지 무더위 속에서도 길게 드리워진 옷소매가 손등을 다 덮고 손가락만 겨우 보였는데, 그 손가락마저 핏기가 없고 뼈가 불거져 나왔다.
거기에 느른하게 걷는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마치 산송장 같다고 청년은 생각했다.
몇몇은 여인을 발견하고 측은한 눈길을 보냈고, 몇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고, 또 몇몇은 “쯧쯧” 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인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도 못했다.
애처로워 보였다.
“이봐, 자네도 걸 텐가?”
무리 중 누가 물었다.
“하하, 저는 빠지겠습니다.”
청년은 잠시 여인에게서 무리로 주의를 되돌리고 멋쩍게 웃으며 거절했다.
“자자, 그럼 다들 밤새 안녕하고, 내일 보세.”
왁자지껄 떠들던 무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 제 갈 길을 떠나자 일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소란이 흩어졌다.
청년은 여인의 뒤를 밟았다.
저잣거리의 상인들은 벌써 좌판을 정리하고 집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벌써 가게문을 걸어 잠근 상점도 이따금 보였다.
생선이나 고기, 채소 가게 주인들은 반찬거리로 쓰라며 오늘 팔지 못한 상품을, 과일이나 과자 가게 주인들은 밤참이나 주전부리로 먹으라며 내일은 팔지 못할 상품을 주변 상인에게 나눠주거나 단골손님에게 덤으로 얹어 주었다.
이참에 서로 선심도 쓰고, 저녁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는 것도 내심 나쁘지 않다 여겼기 때문이다.
여인은 청년이 자신의 뒤를 밟는지도 모르고 저잣거리와 중간 상가를 가름하는 샛길로 막 들어서려 할 때였다.
“이보오.”
낮고 쉰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여인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거 한 잔 하고 가게나.“
중간 상가가 시작되는 길 모퉁이에 자리한 약방의 주인 어르신이었다.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약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귀랑 이것저것 넣어 끓인 차인데, 마침 딱 마시기 좋게 식었으니 한 잔 하고 가라고 불렀네.“
어르신은 작은 찻잔에 담긴 차를 여인에게 건넸다.
주춤주춤 건네받은 찻잔을 빤히 내려다보던 여인의 눈동자에 작은 동요가 일었다.
여인은 홀짝, 홀짝 두 번에 걸쳐 차를 마시고 곧바로 잔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처음보다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후유.”
약방 주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르신은 가련한 여인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약방의 격자 유리문을 굳게 닫고 안채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이번 보름도 무사히 넘어가야 할 텐데…….”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고급 요릿집이 있는 향락의 거리를 제외하곤, 저잣거리와 중간 상가, 그리고 고급 상가마저 인적이 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