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

3

by 아무




‘란’은 유명한 가수였다.

어여쁜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로 등장과 동시에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가 무대에 오르면 온 동네 청년들은 물론 어린아이부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까지 모두 몰려와 노래를 들었다.

음악당은 연일 매진이고 야외무대에 오르는 날이면 잘 보이지도 않는 광장 끄트머리까지 인파로 가득 찼다.

보이지는 않지만 노랫소리라도 한 번 들어보겠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들었다.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청아한 그 목소리가 여기 이 마음을 살살 어루만지며 보듬어 주는 듯했다.

대중은 마법처럼 사랑에 빠졌다.

란의 신곡이 나오면 거리 곳곳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래뿐만 아니라 그녀가 입은 옷과 장신구, 화장, 즐겨 먹는 간식까지도 유행했다.

그녀가 나타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채소 가게를 가도, 사탕 가게를 가도, 장신구 가게를 가도, 언제나 낯선 이의 시선과 관심이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녔다.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호위를 받았다.

마치 왕녀처럼.

란은 노래할 수 있는 무대만 있다면 다른 고초는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꼭 모든 날이 좋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괜찮은 나날이었다.

겉보기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가수 란이 돌연 잠적했다.

한동안 란이 잠적했다는 소식이 신문 1면에 도배되었고, 길거리에서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주된 낭설이라고 해봐야 고작 염문설이 다였던 란은 잠적과 동시에 거의 모든 풍문의 중심이 되었다.

지병이 있어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갔다고 하더라, 어디로 공연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하더라, 도박 중독이라 도박 빚이 어마어마하다더라, 경호원이랑 눈 맞아서 야반도주했다더라, 어떤 남자의 애를 배서 몰래 출산하러 갔다더라, 사기를 당했다더라, 아니다 사기를 쳤다더라, 미제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더라, 남자에게 희롱당해 제 손으로 명을 달리 했다더라…….

근거 없는 소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드높이 치솟았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마법에서 풀린 대중의 사랑과 관심이 공중분해되었기 때문이다.


“제 조사에 따르면, 란 씨는 재능을 착취당했어요.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죠.“

소녀는 양손을 옆구리에 척 올리고 ’흥‘ 하고 콧소리를 내었다.

“그 매니저라는 작자가 노랫값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여기저기 쉴 새 없이 데리고 다니며 노래만 시켰다지 뭐예요. 한 번은 란 씨가 몰래 도망을 치려다 실패했는데, 그 뒤로 하루종일 감시가 붙었대요. 아아, 숨 쉴 구멍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란 씨는 사라지기 이틀 전에 무대에서 쓰러졌어요. 소문처럼 지병이 있었던 건 아니고 영양실조였대요. 잘 먹고 푹 쉬면 된다면서 의원이 입원을 하라고 했죠. 그런데 매니저가 환약만 먹이고 데려가려고 해서 의원이 억지로 입원을 시켰어요. 란 씨는 병원에서 주는 밥과 탕약을 먹고 이틀 내내 잠만 잤대요.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또 한차례 이야기를 마친 소녀는 ‘으흠’ 마른기침을 하고는 신의 표정을 흘긋 살폈다.

신은 소녀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묵묵히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소녀는 기분 좋은 예감이 스쳤다.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 신이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마침 갈증이 나던 차였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 든 주머니는 묵직해 보였지만 새털처럼 가벼웠다.

백귀라 불리는 신의 물건이라 가벼운 걸까, 장난을 걸어온 걸까.

가죽 주머니를 두 손으로 꼭 잡고 흔들어 보았다.

찰랑.

“그 물 마시고 이야기 좀 그만해.”

“그럼 저를 데리고 가 주시는 건가요?“

“이미 가고 있잖아.”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

기쁨에 찬 소녀가 다시 물었다

“정말 절 데려가 주시는 거죠?”

“그래, 그러니까 이제 조용히 가.“

신은 천천히 걸었다.

소녀는 잠시 멈추어 주머니에 든 물을 마셨다.

입가로 흐른 물방울을 손등으로 닦아 내고 뒤처진 만큼 총총 걸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녀의 입이 씰룩거렸다.

머지않아 다시 소녀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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