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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는 한 달여만에 도회지로 외출했다.
귀부인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서 깊고 부유한 가문의 안주인이자 아름다운 얼굴과 기품 있는 태도로 가문의 위상을 드높인 귀부인이 휴의 단골손님이 된 지도 벌써 3년이나 되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임을 알지만, 노화가 시작된 귀부인은 아름다운 지난날을 붙잡고만 싶었다.
거울 속 눈가에 어렴풋이 보이는 주름에 깊은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중년의 귀부인은 노화가 찾아온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피부 미용에 좋다는 화장품과 약품은 닥치는 대로 사들여 써보았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아름다운 얼굴로 사랑받았으나 아름다운 얼굴에 스스로 발목 잡힌 꼴이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며 고개를 내저었겠지만 그녀에게는 큰 근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시름에 빠져 속앓이 하는 그녀를 지켜본 하녀 하나가 ‘휴’라는 사람을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넌지시 권했다.
그 권유가 지금에 이르렀다.
휴가 처음 귀부인의 편지를 받고 대저택의 응접실에 발을 들였을 때,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으나 마치 고독한 외딴 성처럼 쓸쓸해 보였다.
속앓이로 수척해진 안색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닿을 수 없는 존재를 향한 연심과 같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긴 했으나 그녀가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지난날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향한 미련은 어느새 집착으로 바뀌었고, 나날이 강해지는 집착은 결국 그녀를 심연에 빠뜨렸다.
휴는 그녀를 돕기 위해 많은 방법을 시도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차도가 있는 듯하다가도 제자리로 돌아가 있고, 극복한 듯 보이다가도 후에 다시 만나면 더 깊은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심연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다.
이미 가졌으나 더 가질 수 없는 그것을 향한 욕망이 그녀를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상담은 시작점으로 되돌아갔다.
휴는 귀부인에게 세 종류의 씨앗을 건네고 저택을 나왔다.
한 구획이 넘는 저택의 긴 담장을 따라 걸으며 부인과의 상담을 복기했다.
이윽고 기나긴 담장의 끝에 다다라서야 크게 호흡하고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한산한 고급 주택가를 벗어나자 어렴풋이 왁자지껄 소란하게 생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었어?”
“무얼요?”
큰 격자창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며 휴가 되물었다.
한자리 차지한 짐꾸러미, 저잣거리와 중간 상가를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에게 부탁받아 산 물건과 동네 꼬마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산 간식이 든 봇짐을 보며 찻집 마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못 들었어?”
“그러니까 무얼요?”
휴는 생글생글 웃으며 재차 물었다.
그러자 마담이 콧김을 한 번 내뿜고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맞은편 의자에 동의도 구하지 않고 털썩 앉았다.
손님이라고는 휴 외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담은 어째선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제가 보름이었잖아.“
“그랬죠.”
“이번엔 여자 아이가 없어졌어.”
“여자 아이요?“
휴는 처음 듣는 양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저어기 아랫마을에 살던 아인데, 올해 나이가 열여섯이랬나 다섯이랬나. 듣자 하니 염력인가 뭔가 하는 무슨 힘이 있대. 그 마을 사람들은 쉬쉬했다는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더라고. 그리고 혼자 어딜 쏘다니는지 매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듣는 사람도 없는데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면서 곳곳을 다 돌아다녔다네. 그래서 그런가, 해코지는 안 당했는데 꺼림칙하다고 사람들이 걔를 피해 다니고 그랬나 봐.“
거리에 흐르는 기류가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보름달이 뜬 어젯밤, 안타깝게도 연쇄 실종 사건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지난 피해자들은 따져 볼 것도 없이 연민할 대상이었지만, 이번 피해자는 조금 다르다 여긴 탓일까.
무서운 사건의 피해자에게 특이점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그들은 약간의 안도를 품었다.
휴는 쓴웃음을 지으며 작게 읊조렸다.
“반년만인가.”
미지근해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거리에 흐르던 말들을 떠올리며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 속을 유영했다.
마담은 그의 사유를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