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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Sep 05. 2022

안벅지에 힘 좀 주고 가실게요

안벅지와 뒷구리

"이번 운동은 안벅지를 타겟하는 운동이예요."

처음 들었다. 안.벅.지. 하지만 디인지 알 것 같다. 과연 동작을 해보니 허벅지 안쪽에 힘이 들어간다.


요즘 몇 달째 홈트를 하고 있데 생경한 표현이 종종 나온다. 안벅지, 옆벅지 뭐 그런 말이다. 자매품으로 뒷구리도 있다.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도 처음 보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맥락상 알 것 같지 않으신가요?


가끔 우리말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런 부분 때문이다. 어미랑 어근을 자유롭게 다른데다 갖다붙일 수 있고 그러면 처음 들어도 적당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많이 생기는 게 이런 특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순우리말이 아니라도 플로깅보단 줍깅이 더 쉽게 들린다. 픽사베이

세계적으로는 플로깅(스웨덴어 줍다와 영어 jogging의 합성어로 쓰레기 주으며 조깅하는 것)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말로 줍깅이라고 하는 신조어도 이런 식이다. 깅이 영어에서 따온 표현이라 좀 아쉬운 면이 있어 보이지만 줍깅이라는 표현이 훨씬 알아듣기 쉽지 않나.


아름다운 표현은 아니지만, 층간소음도 옛날에는 없던 말이지 않나. 아파트 특성상 생기는 층과 층 사이의 소음. 단순하지만 아주 쉽게 새로운 현상을 이해할 수가 있다.


언어는 참 살아있다. 그래서 힘이 있다. 세상은 참 빨리도 변하는데 언어도 그렇게 빨리 변하는 새로운 현상을 참 빨리도 따라잡는다. 마케팅에서는 새로운 현상을 최대한 빨리 자기가 만들어낸 언어로 표현하도록 선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 선배 중 한분은 유망주가 보이면 그 친구 특징을 잘 딴 별명을 짓는데 골몰하시는 분이 있었다. 딱 떨어지는 별명을 지어두면 너도 나도 다른 이들이 따라쓰고 그러다보면 업계 안에서 힘을 갖게 된다. 언어를 선점하면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말과 글은 참 그렇게 아름답고 무섭다.


우리말은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저런 힘이 더욱 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우리말을 재미있게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다보면 참 재기발랄한 표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진 파일 여러개를 붙여 움직이도록 한 걸 '움짤'이라고 한다. 움직이는사진이라는 뜻인데 이 말이 생긴 과정도 재미있다. 짤은 온라인게시판에 사진 없으면 게시물이 삭제되는 일이 있어 '잘림방지용 사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게 '짤림방지용 사진'에서 '짤방', '짤'로 줄고, 그러다 사진 자체를 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움짤'까지 만들어냈다.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것들을 나타내는 말이 순식간에 생기고 쓰인다. 말 자체도 재미있지만, Gif니 뭐니 하는 정식 용어보다 훨씬 언어의 장벽이 낮아졌다고 생각한다.


글자의 생김새를 이용해 멍멍이를 댕댕이라고, 귀여워를 커여워라고 하는 것도 정말 커엽지 아니한가.

사라져가는 오래된 단어들을 보며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물론 있지만.

나름의 가치가 있을텐데도 점점 쓰지 않고 잊혀져가는 단어들도 있어 조금은 섭할 때도 있긴 하다.

혹은 줄임말을 너무 많이 쓰거나 조악한 조어들이 많이 만들어지는게 그렇게 좋기만 한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표준어가 아니라도, 생긴지 얼마 안된 말인데도 우리가 의사소통할 때 무리가 없는 이런 면, 여전히 우리말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면에서 언어를 자유롭게 변형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원칙은 잘 알아두더라도 자유롭게 말을 가지고 나도 고, 놀 두고 보자. 어쩌면 책읽으라는 백 번의 잔소리보다 말과 글을 듣고 보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는 이라는 걸 더 잘, 더 빨리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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