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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Aug 30. 2022

발로 만든 찹쌀떡?

수제와 공장제

오랜만에 찹쌀떡을 사왔다. 신촌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길을 걷고 있는데 창문 쪽에 오동통한 찹쌀떡들이 잔뜩 줄을 서있다.

우리집 아이들이 찹쌀떡을 정말 좋아한다. 가끔 빵집에 갔다가 500원짜리 동전만한 찹쌀떡이 네 개쯤 들어있는 찹쌀떡을 사올 때가 있는데, 두 아이들이 그걸 두 개씩 먹으려다 눈치 없는 엄마가 하나 먹으면, 둘로 나눌 수 없으니 아빠도 하나 먹어야 한다고 밀가루를 뚝뚝 흘리면서 아빠를 쫓아다니곤 했었다. 옛날 생각을 하며, 아주머니에게 한 상자 달라고 주문한다.


근방에서 제법 유명한 떡집인 것 같다. 빵집에서 파는 것과는 생김새부터 제법 다르다. 오동통하고 윤기 흐르는 하얀 찹쌀 겉면 사이로 팥소가 슬쩍 비추는 것을 보니 , 아, 이건 진짜다.

점심 먹고 들어와 배가 부른데도 외면하지 못하고 한 입 베어 무니, 와, 최근 먹었던 다른 찹쌀떡들과 맛이 많이 다르다. 짭쪼롬하지만 거칠지는 않은 흰찰밥을 먹는 것 같은 겉부분하며, 간은 잘 맞지만 아주 달지는 않은 직접 쑨 팥소까지. 이건 분명 이집에서, 본인들만의 레시피로 만든 떡이다. 요즘 이런 찹쌀떡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달인의 수제(手製) 찹쌀떡이구나.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음식이나 판매 물건에 '수제'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경우가 많다. 보통 그런 건 같은 종류의 제품이더라도 가격이 더 높다. 이날 사온 떡도 빵집 찹쌀떡보다는 제법 비싼 개당 1500원. 영어로도 'Handmade'가 붙은 제품들이 가격이 더 높은 걸 보면, 이제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한 가치가 점점 더 인정받는 세상이 오는 것 같다.


20년 전쯤 대학 때, 태국 방콕에 배낭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길에는 배낭여행자를 대상으로 장사하는 세탁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건 세탁기에 빠는게 사람 손으로 빠는 것보다 더 비싼 가격을 받았다는 것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하는게 더 힘들텐데 왜 기계로 하는 걸 더 비싸게 받는지 궁금했는데 태국어는 못하고 영어도 짧아서 직접 묻진 못했다. 다만 근처 한국 교포에게 물어보니, 개발도상국일수록, 사람의 노동가치가 싼 것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긴 수제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것은 인간의 가치가 더 귀해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온라인 어느 커뮤니티에선 '수제치킨'이라는 사진이 올라온 것으로 논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디서는 치킨을 발로 만들어 파느냐고. 다른 이들은 그 말에 수제가 꼭 손으로 만들어 수제냐, 공장에서 만들지 않은게 수제지, 공장에서 만드는 거나 집에서 만드는 거나 거기서 거기지, 뭔 차이가 있냐 등등 다양한 의견이 대립했다. 수제라고 붙이고 비싸게 받는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수제'라는 말이 사실 음식의 맛이나 제품의 품질을 보장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명품 가방 진위 판정 기준 중 하나가 일률적이지 않은 바느질이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수제'라는 단어가 붙은 상품에서 찾는 것이 최상의 퀄리티나 안전, 혹은 안정성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먹은 똑같은 찹쌀떡 사이에서 독보적인 맛을 내고 있는 찹쌀떡을 깨물며, 이 맛이 찾고 싶을 때는 꼭 이 집에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우리가 수제에서 찾는 것은 어쩌면 공장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개성'이라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제(手製) : 기계를 쓰지 않고 만든 제품이라는 뜻으로 반대말은 공장제, 공산품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그런데 손 수(手)자가 들어가는 바람에 아래와 같은 비아냥을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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