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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Sep 25. 2022

눈치학원 열면 오실 분?

사회성과 눈치

얼마 전 어느 행사에 갔다가 기념품을 받았는데 'nonunchi'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다. 노 눈치. 눈치를 안 본다는 뜻이겠지. 귀엽다.


요즘 '눈치를 보지 말자'는 구호가 많이 들린다. 사실 구호가 높다는 것은 반증인 경우가 많다.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이지. 우리 사회만큼 눈치를 많이 보는 곳이 어디 있나. 체면, 체면치레에서 늘 자유롭지 못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나부터도 그렇고.


'눈치'라는 단어 영어 위키피디아에도 등록됐다고 들은 적이 있다. 눈치라는 단어의 음성이 제법 독특한 것도 그렇지만, 아마 그 뜻이 문화를 담고 있다고 봤으니 사전에 올렸겠지 싶다. 무엇이 그들의 관심을 끌었을까(또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다. 그래도 궁금).


아이들과 이 얘기를 나누다가, "그걸 왜 등재했을까?" 물으니, 둘째가 "눈치볼 일이 없어서 신기했던 거 아닐까?"라고 한다. 어쩌면 맞는 말일수도 있겠다. 전체보다 개인이 중요하다고 얘기해 온 사람들에게는 눈치를 보는 게 신기할 수도 있겠지.

 

요즘은 눈치가 그렇게 꼭 나쁘기만 한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눈치를 좀 봤으면 좋겠다. 눈치 좀 봤으면 싶은 사람은 안 보고, 그만 눈치봐도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눈치를 본다. 자꾸 눈치보지 말랬더니, 눈치 없는 이들이 더 눈치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축제 뒤에 남겨진 쓰레기 더미, 옛날 생각하고 아무데나 가래침을 뱉는 저기 저 어르신,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제발 눈치 좀 보고 살자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눈치라는 게 요즘 많이 쓰이는 말로는 사회성이 아닐까. 우리 어릴 때는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 중 하나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도 자주 나오는 단어다. 전에는 집에 애들이 많아서 살다보면 저절로 길러진 부분이 많았는데, 요즘은 아이가 하나둘인 집이 많다보니, 예전에 비해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그런지, 사회성 떨어지는 애들이 많다는 한탄이 선생님들에게서 종종 들려온다. 코로나로 한 2년 가까이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이런 부분이 심화됐다는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그래선지 아이의 사회성을 키워주는 것은 요즘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심리치료를 통해 사회성을 기르게도 할 정도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이상한변호사우영우의 우영우는 높은 지능은 가졌지만, 자폐인의 특성상 사회성이 낮다. 사회성이 낮으면, 뭐가 문제일까. 세상 사는게 불편해진다. 세상의 맥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묻어져 가기 어려우니까. 아무리 눈치를 안 보려고 해도, 눈치가 보이는 성격이 된다.


어릴 때는 사회성이 좋다는 것을 사교성이 좋고, 친화력이 높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특히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니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사전을 보니 사회성(社會性)은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인격, 혹은 성격 분류에 나타나는 특성의 하나로,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 따위"를 말한다고 돼있다.


친화력 좋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오래 보다보면 사회성은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저 '원만성'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 만나고 사귀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기 의견을 자연스럽게, 원만하게 내보이고,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원만하게 그 조직에서 어우러져 지내는 능력. 이런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성인 중에도 많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아마 불현듯 떠오르는 한두 사람 쯤은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걸?

눈치를 챙기자. 더쿠 펌

글 쓰려고 자료를 찾다 보니 '눈치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도 적잖이 보인다. 눈치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자기존중감의 매개효과-(2014, 허재홍)이라는 논문 초록에 '기존 연구에 따르면 눈치는 대인관계와 안녕감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연구를 위해 대학생 설문 등을 통해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 "눈치는 자기존중감을 매개로 안녕감을 향상시키는 반면, 우울이나 불안은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 눈치가 정신건강에 유용한 개념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원만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눈치 정도는 필요하다. 과하게 눈치보지 말라는 걸, 눈치보느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못하거나, 하기 싫은 일까지 하지 말라는 걸, '눈치 제로로 갑시다!'라고 이해하는 것도 사실 어떻게 보면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전에 어떤 교육 사업하시는 분이 "이상하게 교육을 꼭 받아야하는 분들은 안 받고, 충분히 교육받은 분들이 그냥 교육받는 게 좋아서 오신다"고 웃으신 적이 있는데, 눈치가 꼭 그렇다. 눈치 좀 봐야될 사람들도 세상에 아직 많은데, 눈치학원 열면 꼭 다녀야 될 분들은 또 안 오실 것 같다.


사회성 : 남과 사귀거나 집단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잘해 나가는 경향이나 능력(출처 다음어학사전). 육아프로그램 등 심리전문가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다. 특히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큰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면서 부모들의 큰 관심사다. 남과 사귀기를 좋아한다는 뜻의 사교성과는 좀 다르다. 사교적이지 않더라도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하는 사람이 사회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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