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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l 31. 2022

무딤의 축복

모르면 행복하다

모처럼 아이들이 학원을 안 나가게 된 주말 급하게 놀러갈 곳을 찾다가 한 글램핑장을 발견했다. 습관처럼 리뷰를 보니 뭔가 일관적이지가 않다. 좋다는 사람들이 많은 사이에 몇 사람이 시설이 오래되고 낡았다고 지적한다.


그럼 나는 음 오케이 여기가 좋겠군 하고 예약한다. 나와 우리 식구들은 시설이 오래된 부분에서 불만을 느낀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최근 다녀온 글램핑장일뿐 시설이 낡은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by 슬리피언

나는 무디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평가를 많이 들어왔다.


일할 때는 이런 성격이 불만이었다. 기자들 아이템이라는 게 사실은 불편한 부분이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의 문제점, 그 분야의 문제점, 그 사람의 문제점 등등.

그런데 불만이 별로 없으니 아이템 찾는 게 힘들었다. 어떤 선배는 나한테 "쟨 참 조지는 거 못해"라며 은근 면박을 주기도 했다.


한번은 선배가 무슨 문제점을 콕 찍어서 기사를 쓰라고 했는에 양쪽 입장 말을 다 들어보니 둘다 맞는 말이어서 그대로 기사를 썼다가 된통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뭘 어쩌란 말인가. 내 보기엔 문제가 없는데. 지가 쓰던지.


마지막으로 일하던 곳은 기자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던 곳이었는데 아예 들어갈 때부터 "내가 비판하는 기사를 잘 못 쓴다. 좋은 점을 소개하는 기사를 많이 쓰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셔서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독자들이 "어디어디에 문제가 많은데 왜 그런 기사는 안 쓰냐"고 묻는 경우가 있어서 사람 맘이 다 같은게 아니구나 싶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이 많으니 저희는 좋은 점 위주로 싣는다"고 말씀드리면 대체로는 오 그렇군요 하고 이해해주셨다.

살면서 살짝 무딘 날인 칼로 사는 것도 꽤 좋다. 픽사베이

기자로서의 삶을 중단했으니 나는 더이상 무딘 촉의 날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무딘 촉을 기자 생활 15년 동안 십분 벼러놨는지 종종 똥촉이 매섭게 설 때도 있다. 하하


살면서 느낀 바 무딤은 축복이다. 느껴서, 알아서 불행한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던가.

어느 숙소에 가도 좋은 게 먼저 보이고, 뭘 먹어도 맛있고, 누구를 만나도 즐겁고.

후진 숙소도 여긴 풀벌레 소리가 잘 들려 좋고, 5성급 호텔은 또 화장실이 넓고 깨끗해서 좋다는 큰아이 말을 들으니 너도 나처럼 무디구나 싶어 슬쩍 웃음이 난다.


나와 남편은 아이들 풀배터리 검사를 하면서 양육검사나 검사자와의 상담을 통해  우리가 무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느끼고 알더라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 그렇구나 우리는 예민한 날을 밖으로 내밀고 살지 않아 큰 상처 없이 살아왔구나 싶다. 역시 무딤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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