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공동 육아에서도 갈등의 씨앗은 존재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의 도움이 절실했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은 변함없었다.
달라진 건… 바로 나였다.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던 나날들
결혼 1년 후, 나는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휴가에 이어 약 6개월의 짧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해야 했기에, 친정엄마의 도움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내가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왜 다른 사람을 써?”라고 하셨고,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시터 갈등이나 아동학대 뉴스는 내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본인만의 방식으로 아이와 살림을 정성스럽게 챙겨주셨고,
나는 덕분에 안정적으로 회사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남편은 조심스럽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훈육 문제에서 부모로서의 우리의 입장이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을 지적했다.
우리가 아이를 훈육할 때면,
엄마는 아이 편을 들며 오히려 우리를 나무라곤 했다.
남편은 이런 태도가 아이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율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아이를 맡긴 입장이었고,
무엇보다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엄마의 성격을 잘 알기에 큰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몇 번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긴 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내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맡긴 대가이자, 착한 딸의 몫이라고 여겼다.
한 번은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가셨을 때,
고속도로 위에서 아이가 불편해한다며 안전벨트를 푸시고 무릎에 눕혀 이동하셨다.
아무리 말려도 “우리가 잡고 있으니 괜찮다”며 끝까지 그렇게 이동하셨다.
그 상황에서 나는 무력했고, 분노보다 체념이 먼저였다.
그렇게 불편함과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명확히 내 입장을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해외 주재원 발령이 났고
지쳐가던 나에게 그 소식은 한 줄기 빛 같았다.
누군가는 도피성 결혼을 한다고 하지만,
내게는 ‘도피성 해외생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