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그 아이를 이해해줬더라면"

또 다른 피해자, 그리고 나도 가해자

by 쑝쑝


내 동생으로 태어나지 말아줘.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동생이 태어났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편이었는데,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고 있을 때 나는 매일 이렇게 기도했다.

‘착한 아가야, 내 동생으로 태어나지 말아줘.’

이미 그때의 나에게 엄마는 무섭고 가혹한 존재였다. 그래서 태어날 동생이 걱정됐던 것이다.

내 동생은 착하고 마음이 여렸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의 아이였다. 내 기억 속의 동생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까지는 엄마와 큰 마찰이 없었다.

엄마가 나를 때릴 땐, 나는 그냥 조용히 맞고 있었던 반면, 동생은 잘못했다고 빌며 엄마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문제의 시작, 엄마의 통장

모든 갈등의 시작은, 동생이 중학교 2학년이던 해였다.

동생이 엄마의 서랍에 있던 모임 통장을 발견했고, 그 위에 써있던 비밀번호를 이용해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군것질을 하거나 PC방에 가는 데 몇백만 원을 쓰다 결국 발각되었다.

그 이후, 아이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시작된 엄마의 ‘잡들이’는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동생은 나처럼 맞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도망쳤고, 가출을 감행했다.

엄마는 학교 근처, PC방, 골목, 공원까지 온 동네를 뒤지며 아이를 찾아다녔다. 잡히면 또 맞고, 또 가출하고... 그 반복이었다.


가혹했던 가족들

결국 동생은 중학교를 자퇴했고, 엄마는 “더는 이 아이를 못 보겠다”며 중국 기숙학교 유학을 강행했다.

하지만 도피성 유학이 아름다울 리 없었다.

동생은 가족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지 다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상황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늦은 자기 반성

부끄럽게도 그 당시 나는 그 체벌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나에게는 그 일이 너무나 큰 잘못처럼 보였고, 가족을 힘들게 하는 아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해결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나라도 그 아이를 이해해줬으면 어땠을까?’
‘나라도 그 아이가 맞을 때 말렸더라면 어땠을까?’

돌이켜보니, 나는 그 아이에게 또 다른 가해자 중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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