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에게 좋은 부모로 남을 수 있길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나를 추스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책이었다.
회사 다닐 때에는 주로 자기 계발 관련된 책을 읽었고
휴직 중에는 부동산, 재테크 관련 책을 읽었다.
내 마음이 어지러운 지금은 심리, 인문학 관련 책을 읽고 있다.
수많은 지문들을 읽으며 내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나를 이해하고 나의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 싶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한 아이의 부모이다.
이 사실이 나를 더 괴롭게 하기도 내가 정신 차리게도 한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란..
'자녀가 홀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반자이자
언젠가 내 자녀가 독립하고 힘든 순간일 때
언제든지 편안하게 찾아와서 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
나는 나의 부모님께 공감과 편안함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양육을 할 때
미숙함이 많이 있었다.
고작 7살짜리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그냥 놀고 있으면 그게 불안했다.
내가 어렸을 때 주말에 2시간 이상 쉬면 집에서 불호령이 떨어졌기에..
내가 내 아이를 보며 불안해했다.
또 나는 스킨십에 인색했다.
누가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주지 않았기에..
내가 베푸는 것도 어색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나와 다르게
"엄마~ 아침, 저녁으로는 무조건 안아줘야 해. 따뜻하게 안아줘"라고 말하는
스킨십 중독자이다.
본인의 마음이 불안할 때 나에게 다가와 안기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아이.
내가 혼을 내도 나에게 와서 나를 안아주는 아이.
그 아이에게서 나는 체온을 나누는 따뜻함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나의 부모님과 꼭 닮을까 무서웠다.
나이가 들어서 어느 순간 보면 내가 싫어했던 나의 부모와
꼭 닮아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려 노력하고
아이를 믿으려고 노력한다.
집은 아이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끌려가지 않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때때로 버럭하고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나의 미숙함이 있을 땐 아이에게 사과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다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