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런 개고생이라면 기꺼이!

교환학생의 꽃, 여행 이야기

by 권유
KakaoTalk_20191019_215606416.jpg 쿠바 트리니다드의 '음악의 집(Casa de la Musica)'에서 바라본 노을. 실시간으로 붉어지는 노을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행은 교환학생을 떠나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일이다. 먼저 교환학생을 떠나 파리에서 한 학기를 보냈던 언니가 유럽 이곳저곳을 다니는 걸 보며 교환학생을 더욱 동경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교환학생을 알아 볼 때도 파견교에 가면 쉴 때 어디로 떠날 수 있을지에 큰 비중을 두고 생각했다. (시드니가 밀려난 데는 이것도 한 몫 했다. 오세아니아가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미 다녀온 여행, 앞으로 갈 여행, 그리고 하고 있는 여행은 교환학생 생활의 큰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교환학생 생활은 즐거운 것과 별개로 항상 한국에서 하지 않던 걱정을 달고 살게 되는데,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지난 여행을 추억하는 일이 그런 걱정거리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줬기 때문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요?


20191004_185534 (1).jpg 몬트리올 몽루와얄 공원 (parc de mont royal)의 야경. 일몰을 보러 갔다가 어둑해질 때까지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그리운 몬트리올.

맞다. 사실 기숙사 방이 훨씬 안온한 편이다. 밖에서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게 된다. 한국에서도 많이 걷는 편이었지만, 여행에서는 항상 긴장 상태이기 때문에 밤이 되면 훨씬 많이 지쳤다. 그 정도로 경계해도 항상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쿠바에서는 돈을 잃어버렸다. 20유로. 아주 큰 돈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하루 여행 경비를 30CUC(미화로 30 달러. 20유로는 약 22달러.)정도 매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현금을 준비해 놓지 않은 탓에 한바탕 난리를 쳐 놓은 상태여서 더 충격적이었다. (피어슨 국제공항에는 내가 쓰는 은행의 atm이 없었는데, 난 막연히 입국장에 들어가면 있을 줄 알고 들어갔다가 입국장에는 캐나다 달러를 뽑는 atm이 없어서 유로를 뽑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이후였다.) 혹시나 돈이 모자라는 상황이 온다면 카드를 쓰기 힘든 쿠바에서는 정말 치명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20유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파악했던 시점은 하루종일 아바나 시내의 캣콜링에 시달린 다음 날 아침이었기에 너무 피로했다.

몬트리올에서도 처음부터 아주 불쾌한 경험이 있었다.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향하는 비아레일에서 간단하게 요기하기 위해 바나나 브레드와 그래놀라 요거트를 시켰다. 내 계산이라면 15달러를 잔돈으로 받아야 하는데 나중에 보니 손에는 10달러가 쥐어져 있었다. 승무원이 실수했나 싶어 아직 멀어지지 않은 그를 붙잡고 잔돈이 모자란다고 얘기했다. 보통은 기억도 못할 텐데 내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아 내가 10달러만 줬니? 여깄어." 하며 너무 자연스럽게 5달러를 내밀었다. 내 동전 지갑이 빳빳해서 동전 꺼내기 힘들어 버벅거리는 걸 보고 날 어설픈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엔 더 불쾌한 일이 있었다. 몬트리올 올드 포트에서 구시가지로 걸어가고 있는데 살짝 무서운 인상의 남자를 마주쳐서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나도 예의 바른 행동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그런 내 옆을 지나가며 내 귓가에 트림을 했다(!) 아주 안 좋은 시작이었다.


그 외에도 밴쿠버, 시애틀, 포틀랜드, 나이아가라 등등에서 각각 겪은, 솔직히 겪지 않아도 됐을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몬트리올에서도 쿠바에서도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몬트리올의 노트르담 성당에 들어가던 그 순간부터 가로등도 없는 몽루와얄 공원의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던 순간까지는 전부 여전히 꿈같다. 토론토로 돌아와 쿠바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데 날 가장 피곤하게 했던 아바나의 장면들이(특히 말레꼰 해변)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다. 돈을 잃어버린 기억은 문득문득 났지만 친구들과 좋은 구경을 하며 술 마시고 이야기하다 보니 차츰 그 공간을 오롯이 즐기게 되었다.

여행지에서의 자잘한 복병과 고난은 오히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의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 상술했듯,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그러나 낯선 곳으로 가득 찬 여행지에서 균일하게 좋은 경험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종류의 고난과 역경은 불가피하다.

특히 동양인 여자라는 사회적 지위는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폭력적인 상황들에 놓이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신분과 외양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이 시점에서 난 내가 맞닥뜨려야 하는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행에 대한 인상과는 분리하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동양인 여자라 겪은 폭력의 경험들을 숨기지는 않되, 그렇다고 나를 압도한 장면들을 왜곡하고 잊어버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음 쉽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여행지에서 당당히 다니고 여러 경험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입이 즐거운 여행


20190826_104037.jpg 포틀랜드의 'Mother's Bistro'에서 먹은 벨지움 와플. 포틀랜드는 소소한 구경거리가 많은 도시였는데도 다른 것보다 난 이 와플이 제일 많이 생각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일상 속에서는 잘 접하지 않던 음식들을 접하게 된다. 예컨대 난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매일 사먹지는 않는데, 몬트리올-퀘벡 여행을 했을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쿠바에서도 물가가 싸다 보니 칵테일 한 잔에 3000원 정도 하는 게 다수였다. 그러다 보니 물보다 칵테일을 더 자주 마신 듯하다. (물이 칵테일과 가격이 비슷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련된 좋은 기억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밴쿠버 잉글리시 베이에서 엄마와 갔던 Cactus Club. 평범한 패밀리 레스토랑이었지만 해변이 보여서 분위기가 매우 좋았고, 난 그곳에서 캐나다의 카스인 Molson Canadian을 처음 마셨다. (그때는 분위기 때문에 엄청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친구가 토론토에서 한 입 먹고 '이거 그냥 카스 아니야?' 했을 때는 부인할 수 없었다.) 저녁 시간의 붉은 빛 햇살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는데 마음을 아주 주기는 힘들었던 밴쿠버에 처음으로 깊은 애정을 느끼며 참치가 줄어들지 않는 포케볼을 먹었다.

사진을 통해 언급한 Mother's Bistro는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매우 유명한 브런치 가게였다. 주말에 갔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 옆 가게에서 먹었는데, 그 집 팬케이크도 맛은 있었지만 이상하게 저 와플은 매우 기억에 남는다. 포틀랜드는 아주 빡빡하게 구경하는 도시는 아니었기 때문에 매일을 무척 여유롭게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여유로운 브런치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겁도 먹고 살짝 지루하기도 했던 포틀랜드에서의 기억이 아주 따뜻하고 여유롭게 남아 있다.

몬트리올에서의 마지막 날, 호스텔 직원은 내게 베이글을 먹었냐고 물었다. 먹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몬트리올 스타일의 베이글을 한 번도 안 먹었냐고 되물었고, 먹지 않았다고 하자 날 현혹하기 시작했다. 네가 마일엔드에 간다고 해서 말하는 건데, 'Fairmount Bagle'은 내 최애야. 그 옆에 뇨끼집은 5달러에 먹을 수 있다고. 꼭 가보길 바라. 원래는 포틀랜드를 회상하면서(...) 마일엔드에서 브런치를 먹으려고 했던 나는 그에게 넘어가 계획을 틀었고, 결국 베이글도 뇨끼도 먹고 그 옆집에서 파는 애플 시나몬 아이스크림까지 클리어했다. 그날은 몬트리올 대중교통 사정 때문에 동선이 크게 꼬여서 장딸롱 마켓에서 마일엔드까지(도보 30분) 걸어야 했는데, 오히려 호스텔 직원의 추천 덕에 식사 시간도 아껴 마일엔드의 편집샵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을 생각하는 일이 좋은 점은, 보통 방문한 식당이나 그 메뉴에 여행지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트리니다드의 까사에서 먹은 조식에서 그곳의 여유를, 캑터스 클럽 사진에서 잉글리시 베이의 나른함을 떠올리는 식으로. 작가 김영하는 글을 쓸 때 오감을 전부 표현하며 써 보는 게 좋다고 자신의 저서(아마 <보다>였지 싶다)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나는 여행의 기억을 조각해 낼 때 음식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해 보려고 한다.


앞으로는


교환학생 생활이 반 정도 남았기에 여행 일정도 반 정도 남았다. 굵직한 계획은 11월에 떠나는 뉴욕-보스턴과 (숙소 예약도 제대로 안 한 건 함정...이제 해야지) 종강 후 떠나는 샌프란시스코-LA. 그 외에 12월 중으로 오타와와 시카고를 짤막하게 다녀 올 예정이다. 사실 쿠바 여행이 꽤 길기도 했고 금전적으로 부담도 됐던 만큼,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겪어야 했던 뭇 상황으로 인해 지금 나는 매우 피곤하다. 남아 있는 시험 및 과제, 에 비해 얼마 남지 않은 잔고와 그에 비해 오래 견뎌야 할 기간을 생각하면 걱정도 좀 된다. 그러나 다시 현실의 짐들이 날 찾아 올 때 곧 다가올 뉴욕 여행을 향해 고개를 들어 보자, 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해 본다. 북미까지 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만큼,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체험들을 토론토 안팎에서 해보고 싶다.


오늘의 트리비아


- 악 피곤해.

- 내일부터는 정말 공부할 거다. (사실 짐도 안 풀었다.)

- 저렇게 썼지만 쿠바에서 결국 돈이 남아서(그것도 일행 중에 나만...) 한 갑에 5CUC짜리 시가를 사 왔다. 바깥보다 비쌌지만 5CUC는 환전도 안 해준대서 어쩔 수 없었다. 시가는..쓰다.

- 오늘 글은 부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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