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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Feb 27. 2020

코로나19 시대의 장염

퍽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

썩 멀쩡하지 않은 몸을 기어이 끌고 올라간 독수리다방에서 바라본 연세대학교 전경. 예쁘다.


  시작은 이번 주 월요일이었다. 언니의 졸업을 맞아 서울에 올라온 엄마와 그 전날 외식을 했다. 동생도 재수를 시작했고, 집안의 큰일도 일차적으로 겪은 우리가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먹었던(아무도 안 그랬어도 나는 그런 의미부여를 해 본다.) 일본식 정식이 잘못됐나 보다. 요 근래 무리하게 잡아 둔 알바 교육 일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을 연약하게 만들어 놓은 게 병균의 활약에 더 큰 몫을 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복통과 본의 아닌 탈수 증세에 시달리는 장염에 걸리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장염에 걸려 본 탓에 장염에 걸리면 열이 나는 줄 몰랐던 나는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자 극도의 두려움에 빠졌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구한 알바인데'였다. 애인이 원래 염증 때문에 장염일 때 열이 잘 난다고 말해 주고 나서야 실소 조의 웃음이 났다.

  장염은 빨리 낫는 게 급선무였다. 질리도록 죽을 먹었는데도 딱히 나을 기미가 안 보였다. 복통이 아주 간헐적인데다가 위염과 달리 입맛도 너무 잘돌아서 내가 다 나았는지 다 낫지 않았는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장에 아주 부담이 되지 않도록 유제품 정도를 피한 채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하고 '내일은 다 낫겠지' 하고 행복하게 잠에 들어도 다음 날이면 몸이 '너 다 낫지 않았음'이라는 신호를 보내 왔다. 그런 신호를 세 번째 받고서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갈 때는 마스크 착용을 잊지 않았다. 의료기관과 약국에서는 조심하는 게 상책이니 말이다.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묻고는 "이틀이면 나아질 것 같은데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나를 돌려 보냈다. 나 또한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를 바라며 엘리베이터를 타서 생각했다. 설사가 멎지 않아요, 라는 나의 진술에 나왔던, "많이 심해요?"라는 첫 질문을. 그냥 빨리 날 집에 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약국에서 약이 조제되길 기다렸다. 포로 된 지사제와 알약으로 된 위장약은 같이 먹으면 안 되고 2시간 정도 텀을 두고 먹어야 한단다. 그때는 왠지 알 수 없었으나 집에 와서 약봉에 적힌 '진경제'라는 말의 의미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다가 알게 됐다. 지사제와 진경제는 같이 먹으면 안 돼서였다. 약을 받고 약값을 내면서는 병원비와 약값을 합치면 밥 한 끼 값임을 떠올렸다. 역시 건강이 재산이다. 약국에서 나오려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약국에 들어와 마스크를 찾았다. 약사 선생님이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학교 도서관에 들를 일이 있어 약국에서 나오자마자 버스를 탔는데 인터넷 쇼핑을 하는 방법을 몰라 마스크는 구하지 못하고 발품만 파는 노인들에 대한 뉴스를 읽었다. 학교가 개강을 더 미루고 사이버강의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친구의 인스타그램 dm에 '잃어버린 일상을 찾고 싶어 ㅠㅠ'라고 답장했다.

  잃어버린 일상. 우리는 어느덧 코로나 19 시절을 지나가면서 그에 맞는 일상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확진자가 얼마나 늘었나 확인한다. 다급히 약속을 취소한다. 방이나 집에 틀어박힌다. 나가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 하는 수 없이 탄 지하철에 나같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빽빽이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우리집 마스크는 거의 다 떨어져 가는데 저 사람들은 어디서 저렇게 마스크를 잘 구하나 궁금해 한다. 다시 틀어박힌 방의 창밖으로 바라본 하늘이 참 예쁘다. 그런 하늘 아래서 학교 앞 광장이나 한강에 옹기종기 모여 밥이니 술이니 먹던 장면을 떠올린다. 아무리 혼자, 조용히 있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코로나19 시절의 일상은 다시 잃어버리고 싶은 일상일 테다. '코로나19'라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공포 때문에 무엇이든 할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조용히 에너지를 얻는 것도 대부분은 자발적일 때 더 효과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배앓이를 하면서 코로나19가 주는 공포에 대해 좀 더 곱씹어 생각했다. '장염에 걸렸다'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전자에 대해 걱정해 주던 사람들이 후자였다면 뭐라고 반응했을까. 나는 전자의 사례라서 아픔을 참고 학원 아르바이트에 나갈 수 있었지만, 후자의 사례가 아님에도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무급휴가'를 갖게 됐다. 학원이 휴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후자에 해당됐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흔들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코로나19가 가져다 주는 공포는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공포를 넘어섰나 보다. 사회적 기반과 물질적 기반이 상실되는 데에 대한 공포 역시 크다. 공포가 또 다른 공포를 불러 오는 것이다.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매출이 나오지 않아 첫 출근한 나를 부당해고 했던 어느 매장을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장염에 걸린 채 노파심을 놓지 못하던 나, 그 상태로 얼렁뚱땅 무급휴가를 받아 버린 나도 생각한다. 한동안 인스타그램에 '칩거 중. 코로나 꺼져' 등을 올리던 사람들이 그래서 미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의식적으로 미워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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