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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Apr 27. 2020

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이  과할지라도

안동 이야기 

  얼마 전부터 안동에서 난 산불로 시끌시끌하다. 고등학교를 안동에서 나온 탓에 소식이 신경 쓰였다. 산불이 시작된 곳은 풍천면으로, 모교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더 그러했다. 다행이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산불은 학교와 다른 방향인, 안동의 남쪽으로 번지고 있다고 했다. 안동시는 큰 행정구역이지만 산불의 여파가 큰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기 전, 고3 때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볼까 했지만 어떤 마음에선지 연락을 드려보지 못했다. 안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내 마음 탓일 테다.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한 수업에서 나를 소개할 일이 있었다. 이름은 뭔지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이야기하면서 안동을 내 마음의 고향이라고 소개했다. 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에 무지 따뜻한 함의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곳에서 난 친구들, 선생님들과 정을 나눴다. 그러나 무조건 그곳을 따뜻한 곳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느 고향이 그렇듯 난 그곳에서 억압과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나도 상처를 받지만, 이곳에서의 나는 적어도 선택을 한다. 상처는 그 과정에서 뒤따르는 책임인 경우가 많다. 반면 고등학교에서 경험한 종류의 아픔들은 굳이 겪을 필요 없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것은 내 진짜 고향에서도 마찬가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안동을 마냥 따뜻하게만 그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난 때로 운동장 구석진 곳에서 따뜻하게 지던 해를 생각한다. 친구와 나는 그곳에 앉아서 조용히(사실 별로 안 조용히) 미래를 향한 달뜬 마음과 삶의 불만을 털어놓았다. 공부가 하기 싫어 상담을 손꼽아 기다렸던 밤에는 왜 문학을 계속 공부해 보려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면 논밖에 없다며 투덜거리면서도 황량하게 서 있는 읍내 유일의 카페에서 블루베리 스무디를 시켜 먹는 걸 낙으로 삼았다. 40분을 버스를 타고 나가 안동 시내에서 맘모스 빵집의 빵을 종류별로 사던 것도. 때로는 좌절하고 미워하고 질투했다만, 그곳에는 내 꿈과 짙은 우정과 가공되지 않은 마음이 있다. 


  산불과 관련해서 여러 SNS를 보는데 어느 사람이 '미통당 밭'인 안동은 산불 진화에 대한 건도 정부가 아닌 미통당에 이야기하라는 글을 봤다. 안동이라는 이름이 가진 그런 느낌 때문인지 안동의 산불은 화제가 되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실은 나조차도 안동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많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들에 대해 얼마나 평면적인 논의가 오가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납작한 논의들이 나도 모르는 새 내 마음을 짓누르는 건 덤이다.


 

* 이 글은 이틀에 걸쳐서 드문드문 쓰였는데, 그 사이에 산불이 진화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큰 산불이었던 만큼 피해 규모는 크지만 인명이나 문화재에는 피해가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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