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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Sep 22. 2020

요가소년 성대모사를 하는 영혼과 움직이는 몸

요즘 밤이면 밤마다 운동을 한다. 

원룸에서 운동하는 게 고통스러울 때가 있긴 하다. 날씨라도 매일 이렇게 좋았으면..

올해 마지막 분기를 맞아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시 꾸물대다가 매트를 펴고 요가 영상을 튼다. 이따금 다른 영상을 틀 때도 있지만, 대부분 요즘 잘 나가는 요가 유튜버 요가소년이 2년 전쯤 업로드한 ‘굿모닝 요가’를 켜 놓고 동작을 따라 한다. 특히 ‘우타나 아사나’를 자주 시켜서 그 이름을 외웠다. 전굴 자세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동거인, 친언니는 요가가 잘 안 맞는다고 하더니 어느새 아침마다 나와 함께 요가를 한다. 대신 난 언니가 수년 동안 해 오던 홈트레이닝 근력운동을 함께 한다. 휴학을 하고 매일 일정한 생활이 생겨서 그런지, 학교를 다닐 때보다 시간에 쫓기는 느낌도 덜하기에 언니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근력운동을 한다. 주로 유튜버 심으뜸과 Chloe Ting, 가끔씩 소미핏, 땅끄부부, 다노의 영상을 본다. 영상들이 질리면 요가소년의 코어 단련 운동을 따라 하면서 요가를 괄시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언니와 나는 Chloe Ting의 악랄함-어느 유튜버보다 빡센 운동을 시켜 놓고 혼자 발랄하게 웃는 모양-이 주는 고통을 토로하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요가소년 브이로그의 내레이션을 따라 해 보기도 한다. 


운동이 나에게 뭘까? 솔직히 말해, 난 아직도 운동을 떠올릴 때 몸무게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운동이 끝나면 옷장 앞에 놓여 있는 체중계 앞에 곧잘 선다. 살이 빠져 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그런 나를 원망한다. 운동을 몸무게와 연관시킬 때마다 쓸 필요 없는 돈을 생각할 때만큼이나 피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 영상을 조금만 보면 피드에 ‘여름에 비키니 입자!’, ‘봄맞이 다이어트 하기’ 따위의 문장이 박힌 썸네일을 띄워 주는 유튜브 플랫폼 아래에 살면서 몸무게 강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단은 이렇게 살아보기로 한다.


어렸을 적 난 운동을 정말 싫어했다. 정말이지 싫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싫어했던 건 아니었던 듯하다. 대학 이후에 날 만난 사람이라면 상상을 못 하겠지만, 난 십 대 시절에 케이팝 댄스 커버-당시의 언어로 ‘방송댄스’-를 무척 좋아했다. 학원을 다니느라 그만둔 검도 학원도 즐겁게 다녔다. 유치원 때는 물을 무서워했지만, 수영을 배운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는 수영하는 팔뚝과 발바닥의 감각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반드시 문제를 짚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운동을 싫어서 질색하는 표정을 짓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붙었던 별명이 생각난다. 핑크돼지. 핑크색 패딩을 입은 돼지라는 뜻이었다. 핑크 돼지라는 별명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인 나를 이해해 준 주변 사람들이 떠오른다. 통통한 건 단순한 신체적 특징이 아니라 결함이었다. 검도를 배우러 간 이유도 결국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 검도학원에서는 금요일마다 검도 대신 레크리에이션을 빙자한 축구를 했는데, 여학생들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를 이유로 여자 탈의실 안에 가만히 있었다. 초등부 여학생은 나를 포함해 보통 세 명이었고, 그중 내가 가장 오래 도장에 나왔다. 내가 하는 모든 동작과 경기는 학교에서 점수화됐다. 고등학교 시절 한 구기종목을 하다 나 때문에 팀의 점수가 없어져 가자 날 흘겨보던 친구의 눈빛이 생각난다. 당시 체육시간에 하던 모든 경기는 수행평가 점수로 기록되었다.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들을 모두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처음 검도학원에 들어선 이유에 순수한 검도에 대한 호기심이 살을 빼야겠다는 마음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 금요일이면 나와 체급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을 초등학생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축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무엇보다 좀 못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대학에 오고 나서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객관적으로 충분해졌지만, 돈과 시간이 아까움을 핑계 삼아 잘 하지 않았다. 결심들 뒤에는 사실 운동을 하는 내가 너무 낯설고,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헬스장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싫은 마음이 숨어 있었을 테다. 


 대학에 와서도 내 종아리 둘레를 줄자로 재는 PT 선생님을 만났다. 운동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살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사람도 만났다. 난 여전히 운동을 잘하지 못해 스쿼트나 플랭크를 할 때면 운동 메이트인 언니의 꾸중을 듣는다. (엉덩이를 더 내려야지! 더 내려가야지! 더!)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운동 자체를 좋아하는 방법을 조금씩 찾아 나서려고 노력 중이다. 토론토에서 화이트 초코를 마시고 운동을 하러 갔다가 다시 도넛을 먹던 감각, 몸짱 할머니들 사이에 있어도 기죽지 않는 마음을 배워 오긴 했다. 그러니 난 할 수 있다. 운동을 둘러싼 모순과 오해에서 내 정신도 분명히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내 자존심은 영영 내 몸뚱이를 이기지 못하겠지만, 오늘도 집에 도착하면 코어를 단련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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