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을 짓는 게 너무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웃는 게 다 거짓된 것 같고 온 힘을 광대와 입꼬리로 보내고 있는 기분에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하여 하루만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아 보기로 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웃음을 꾹 참았고, 안 좋은 일은 속으로만 삭였다. 그날은 참혹한 기분이었다.
아주 고단한 날. 나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내면이 땅을 뚫고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면 나는 내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눈치채고는 섬찟 놀란다. 고등학교 때의 표정 없던 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내 얼굴 근육을 가만히 둘 필요도 없이 내가 참혹한 날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날이면 맑은 하늘의 새털구름도 누군가 하늘을 긁어놓은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날이면 난 열심히 사는 타인을 질투하고 읽은 카카오톡에도 답장하지 않은 채 입맛을 잃는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표정을 잃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화도 안 내고 울지도 않는 날.
지난 학기에 난 내 이중전공인 심리학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스스로 내면을 진단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줬다. 선생님의 말에서 나를 발견할 때마다 움찔거리기도 하면서 나를 살펴볼 용기가 났다. 전공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읽고, 사정상 한 번밖에 받지 못한 교내 상담도 받았다. 그러다 휴학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출근을 할 때면 날아갈 것 같은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표정을 잃었다. 그러나 모른 체했다. 그래 나 뭔가 하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늦게 일어나고 술을 마시고 늦게 자던 시절은 내가 원하던 시절이 아니지.
연휴는 즐거웠다. 언제나 그랬듯 고향의 미움도 지루함도 그대로였지만, 생애 처음으로 공부도 일도(싸움 구경도) 하지 않은 연휴는 처음이었다. 연휴가 이렇게 좋은 것이었다니, 하는 마음에 행복을 과하게 부풀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무능감에 휩싸인 채 휴대폰이라도 마음 편히 하자는 마음으로 회사 옥상정원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장난이 아니라 집에 너무 가고 싶었다.
누가 보면 길을 잃은 듯할 이 글은, 내가 언젠가는 활자화했어야 할 내 출근 일지다. 지난 학기 들은 말들과 읽은 책에서는 그런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 보라던데, 정확히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일단 생각나는 방식대로 태연이 일본에서 낸 미니앨범을 틀어놓고 이 글을 썼다. 앞으로는 웬만한 퇴근길에서 밝든 어둡든 표정을 되찾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