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주간의 소소한 추억팔이
요즘 바쁘다.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사는 이번 주 토요일이다. 이사를 가면 떨리지 않느냐, 피곤하겠다, 시원섭섭하겠다 등 여러 질문과 추정을 듣는데 다 맞는 말이다. 그 모든 감정들이 섞여서 이사가 도리어 무감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 있다. 나는 2년 만에 (실질적) 중구민 상태를 벗어난다.
서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신당역 일대에서 보냈다. 신당 살아요. 하면 다들 얘기를 꺼내는 떡볶이 타운 옆동네, 흥인동에서 2년을 살고 토론토에 갔다. 토론토에서 돌아와서 나머지 약 10개월은 황학동에서 살았다. 흥인동에서든 황학동에서든 지하철을 타려면 어쨌거나 신당역으로 갔다. 주변에서 물을 때 우리 동네는 언제나 신당이었다. 전입신고는 올해 들어서 처음 했지만.
신당에 산다고 하면 떡볶이타운 이야기 다음으로, 학교 근처가 아닌데 왜 거기 사냐고들 물어봤다. 그럼 언니는 2호선을 타야 하고 저는 6호선을 타야 해서요,라고 답하면 사람들이 수긍했다. 실제로 언니와 내가 처음으로 같이 살 곳을 정할 때, 그런 생각이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언니 학교와 가까우면서 나는 6호선을 탈 수 있는 공덕도 있었지만 월세 등을 고려했을 때는 신당이 압승이었다.
신당에 있는 동안에는 내내 언니와 함께 살았다. 평생 같이 산 세월에 비해 언니와 친해진지는 실은 그리 오래 안 됐는데, 친해진 이후로는 같이 사는 게 처음이었다. 언니도 나도 여기 살면서 많이 변했다. 각자 좋은 일 힘든 일이 있으면 좁은 원룸 안에서 서로 이야기를 듣고 같이 좋아하거나 욕을 했다. 동생이 수능 준비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동생은 작은 원룸에서 잠만 자고 일찍 일어나 나가면서 열심히 미래를 준비했는데, 나와 언니는 그런 동생 덕에 요즘 대학생 같지 않게 이른 시간에 불을 껐다. 이사를 앞두고는 동네 주변을 산책하면서 이런 대화를 반복했다. 아우프글렛(금호동의 크로플 가게)이 이렇게 가까운 곳을 떠나다니. 새 동네에는 언더오챠드(신당역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의 분위기 좋은 술집)가 없어서 어떻게 하지. 그래도 가까우니까 오면 되지. 맞아. 언니와 오래오래 한 동네에 살면서 이것저것 먹고 즐겁게 놀고 많은 것을 나눴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동네를 떠난다. 다음 집은 지금 내가 사는 집에서 도보로 약 3-40분 거리다.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지만 중구를 벗어나게 된다. 2년이 넘도록 유지했던 중구민 신분이 사라진다니, 실은 아쉬울 건 없지만 그래도 아쉽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도 그리워할 동네가 고향 아닌 서울에 남아 있다는 점이 좋다. 언제나 사람들 소리로 북적이던 황학동 중앙시장과 노란빛을 밝힌 천막 사이를 지나던 DDP까지의 밤 산책, 쉽게 떠날 수 있던 청계천, 그리고 장소를 옮겨서 계속될 언니와의 대화를 기억해야지. 새 집에 들일 가구를 사러 가기로 한 오늘, 낯설기만 할 수 있었던 서울을 집처럼 만들어준 신당에 진한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