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악기를 배우다
제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호주 오기 전까지 피아노를 배웠었다. 이곳에서도 계속 이어서 하자니 악기를 구하는 것도, 구한다고 해도 이 좁은 집에 두었다가 나중에 처리하는 것도 일이라 애초부터 피아노를 더 배우는 것에 대해선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악기 하나는 손에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계속 고민을 하다가 바이올린을 구해보기로 했다. 아이가 예전부터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 관심이 있었던 데다 이곳에서 친해진 친구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더 동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 남편이 멜버른을 방문할 때, 한국에서 중고거래로 구한 1/4 크기의 바이올린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었다.
이곳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알아보니 개인 레슨은 30분이 기본이고, 보통 50달러~70달러 선에서 레슨비가 책정되고 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어서 여러 교습소를 알아보다 집 주변에 그룹 레슨으로 진행하는 바이올린 교습소를 발견했다. 개인 레슨은 일단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우선은 가볍게 악기를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룹 레슨을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알아본 곳으로 연락했을 때는 이미 주말 시간까지 학생들로 꽉 차서 제제가 수업을 듣긴 어려울 것이라는 아쉬운 답변을 받았었는데, 며칠 뒤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룹 레슨을 원하는 학생들이 더 있어서 시간을 조율 중이며 한 번 아이를 직접 보고 trial lesson을 진행해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남편이 멜버른에 온 그 주 일요일 아침으로 약속이 잡혀서 아빠에게 받은 바이올린을 들고 아이와 함께 해당 교습소를 찾았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선생님도 굉장히 밝으시고 아이들을 많이 다루어본 것 같은 연륜이 느껴졌다. 아이는 30분의 짧은 수업을 듣고 오더니 재미있었는지 바이올린을 얼른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수업은 2주 뒤 일요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1회 30분 수업이고, 1회 수강료는 22달러였다. 그룹 레슨이라 가능한 금액이었다. 그렇게 5월 18일 일요일부터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처음 그룹 레슨을 들으러 갔을 때는 8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있어서 무척 놀랐다. 처음에 듣기로는 6명 정도의 정원으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이해했었는데, 영어 듣기를 잘 못했거나 의사소통에 오류가 있었던 듯했다. 다시 문의해 보니 최대 12~13명까지도 들을 수 있는 그룹레슨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있어서 3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선생님 한 분이 가르치는 바이올린 레슨으로 실력이 늘기는 할지 걱정이 좀 됐다. 그런데 지금 5회 차까지 수업을 들어보니 생각보다는 꽤나 많은 발전이 있어서 놀랐다.
지지난주에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6월 21일~22일에는 텀 2를 마무리하는 연주회가 있을 것이니 사전에 온라인으로 등록을 해달라는 공지를 받았다. 나는 이제 막 시작한 초보 수준인 제제가 끼는 자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다가와 아이가 연주회 참여를 하냐며, 그냥 무대 위에 올라와 인사만 하고 내려가도 되니 부담 느끼지 말고 등록해 보라고 권유했다. 연주회에 오면 다른 아이들 연주도 듣고 다른 친구들 엄마들과도 교류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연주회는 인근 교회를 빌려서 진행될 예정이었고, 토요일 2회, 일요일 2회 그렇게 총 4번의 연주회가 있어서 그중 일요일 2시 연주회로 예약을 했다. 연주회 등록 비용은 10달러였고, 연주회가 끝난 다음에는 다과와 음료를 나누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며 각자 간단한 스낵이나 과일 같은 음식을 준비해 오라는 공지도 있었다.
연주회까지는 2주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제제와 연주할 곡으로 '반짝반짝 작은 별'(바이올린을 배우면 가장 처음에 배우는 곡 중 하나다.) 동요를 고르고, 주말 동안 연습을 했다. 손가락으로 음을 짚으며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신기했는지 금세 재미를 붙이고 연습을 하더니 생각보다 금방 곡 하나를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연주회 당일, 오전에 레슨이 있어서 그 시간에 다른 친구들과 같이 선생님 지도 아래 리허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가져갈 간식을 싼 후에 연주회 장소인 교회로 향했다.
제이의 순서는 열 명가량의 연주자 중에 3번째였다. 대부분 아이들이 이제 막 바이올린을 시작한 6~8세 친구들이라 간단한 곡을 연주해서 금방 끝났다. 본인 순서가 되자 아이는 침착하게 바이올린을 옆에 끼고 무대 위로 올라가서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나도 살짝 긴장이 되었다. 연습했던 것만큼 연주를 잘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남은 친구들의 연주도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연주까지 마무리되었다. 일요일 마지막 연주회인 4시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어서 연주회가 끝난 뒤 각자 챙겨 온 음식을 나누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연주회라고 해서 무척 거창한 무대를 상상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참여해 보니 이번 텀동안 배우며 익혀 온 실력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기회 정도로 여겨졌다. 그리고 제제가 배우는 이 교습소뿐만 아니라 주변에 많은 음악 교습소들이 이렇게 텀이 끝날 때쯤 이런 연주회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학부모를 초대하고 아이들이 그동안 배운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를 떠올려보면 격식을 차리고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 학생, 학부모 모두 신경 쓰고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보다 완성도 있는 무대나 발표회를 위해선 어느 정도 필요한 과정일 수 있지만, 여기처럼 가볍고 자연스럽게 이런 행사를 자주 갖는 것이 훨씬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비록 주1회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제제가 바이올린을 즐기며 배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기초적인 곡이지만 그런 곡을 하나 둘 연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무척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