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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Feb 21. 2018

[인터뷰] 개성파 조연에서 감성파 주연으로,

지윤호의 ‘환절기’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 8년차 배우 지윤호(27)에게 짧지만 소멸과 생성의 드라마가 명징한 환절기는 무엇일까.    


         



“온도차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같은 계절을 살아가게 될 때 이해와 양보는 필수겠죠. 서로가 원하는 계절이 틀려지면 헤어질 테고. 그런 만남과 헤어짐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1년마다 환절기가 찾아오는데 이 작품 자체가 제겐 가장 큰 환절기예요. 그만큼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으니까요. 가치관이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영화예요.”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환절기’(감독 이동은·22일 개봉)는 고3 아들 수현을 키우며 남편과 떨어져 사는 중년여성 미경(배종옥)과 그들 사이에 둥지를 튼 수현의 절친 용준(이원근) 이야기다. 청춘의 성장담을 그린 퀴어영화이자 감정을 다룬 가족드라마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관객의 호평을 샀다.


극중 불우한 가정사를 지닌 용준이 그늘의 느낌이라면 수현은 태양처럼 밝고 눈부시다. 용준을 향한 마음, 엄마에 대한 태도 역시 거침 없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긴 잠에 빠져들었다가 모든 게 변해버린 상황에서 눈을 뜨게 된다. 정적인 영화 속 단순해 보이는 캐릭터임에도 실은 깨나 굴곡이 많다. 지윤호는 한정된 분량 안에서도 청춘의 양지와 음지를 선명하게 대비시키고, 꽤 많은 베드신(?)를 매끄럽게 소화하며 제 몫을 단단히 해낸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거 안 힘들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누워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더라도 배우로서 연기하는 거잖아요. 식물인간이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악몽을 꾸고,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지만 반응하지 못하는 사례를 공부했어요. 그런 게 스크린에 보이지 않더라도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배우로써 당연한 거죠.”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 이 영화 정말 해보고 싶다”고 가슴을 요동치케 한 대사가 있다. 요양병원에서 남편을 병구완하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버스 정거장 세 정거장 밖에 안지난 거 같은데 벌써 인생이 끝나 있네. 왜 이리 아등바등 살았을까”라고 토로하던 대목이다.


“요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기인 듯해요. 백 프로 이해는 못하지만,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어요. 사람 사이의 감정, 당연한 듯 존재하는 부모 친구들이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걸 느꼈죠. 이를 관객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시트콤 ‘갈수록 기세등등’을 시작으로 드라마 ‘신의’ ‘고교처세왕’ ‘치즈 인 더 트랩’ ‘아르곤’ 등에서 개성 뚜렷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치인트’의 찌질한 밉상 오영곤으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앙대 연극과를 졸업한 그는 데뷔 전인 2011년 연극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선 사이코패스 성향의 정신지체아 아들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선택받는 신인인데다 생김새가 사나워서 악한, 밉상, 진상 캐릭터를 주로 했어요. 전엔 캐릭터와 제 성격의 공통분모를 찾는데 주력했고 욕심도 냈죠. 하지만 이번엔 상황에 집중했어요. 평범한 가정의 잘 놀면서도 조금은 예민한, 평균적인 아들 캐릭터라 물 흘러가듯 보여야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저의 밝은 면이 많이 나왔어요. 특히 (이)원근이가 우울하고 불쌍한 인물이라 많이 대비됐던 듯해요.”       


      



첫 공연한 이원근과는 동갑내기다. 둘 다 낯가림이 있는 편이라 초반에는 어색했으나 이후엔 무리 없이 베드신까지 촬영해낼 만큼 호흡이 척척 맞았다.


“연기하면서 친해진 사람 없었는데 원근이랑은 모바일 게임을 시작으로 가까워져서 많이 만났고 굉장히 친해졌어요. 동갑에 성격도 맞고, 영화에 대한 생각이 비슷해요. 원근이는 저에게 없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방방 뛰고 느와르 장르를 선호한다면 원근이는 달콤한 웃음과 사슴 같은 눈망울이 강점이죠. 저럴 땐 저렇게 표현하는 구나, 많이 배웠죠.”


강한 캐릭터로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고 싶은 욕망이 이 길을 걸을수록 가슴에 차오른다. 다양한 걸 잘해도 좋지만 한 분야에서 ‘독보적’이란 평가를 들을 정도로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하는 게 의미 있을 거라 여긴다.


“지금 시기는 달달한 로맨스나 멜로보다는 강렬한 작품에 끌려요. 끝판왕인 느와르 장르를 해보고 싶고요. 제 안에 남성성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영화 ‘26년’에서 진구 선배님이 하셨던 역할이 너무 기억에 남아요. 눈에 힘주는 전형적인 깡패가 아니라 능글맞으면서 전달하는 메시지도 장착한 새로운 깡패상이요. 신인으로서 용기이자 도전이지 않을까요.”       


      



부산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 축구선수를 꿈꿨을 만큼 축구를 좋아한다.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해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친구들과 만나면 잘 논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걸 잘 한다. 남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주의다. 남성적이면서도 어리숙하고 쑥스러워 한다. 표현에 서툴고 과묵한 편이다.


“제 성격을 규정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매 순간 변하는 것 같아요. ‘치인트’ 때는 활달해졌는데 ‘환절기’ 찍을 때는 바닥까지 칠 정도로 가라앉았어요. 그런데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재미난 삶을 살아보고, 또 다른 나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게요. 캐릭터들을 통해 이것저것 배우면서 인간 윤병호(본명)로 자리매김하고, 완성체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요.”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도전할 때다. 또 어떤 게 주어질지 모르지만 단역, 조연, 주연 상관하지 않는다. ‘신 스틸러’ ‘감초’로 미화되곤 하는 조연만 할 수도 있다. 그게 뭐 어떤가 싶다.


“사람을 연기하는 게 재밌어서이지 비중을 따지며 이 직업을 시작한 게 아니니까요. 어떤 비중, 역할이든 제가 해야 하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두 감독님(이윤정·이동은)에게 기회가 되면 꼭 보답하고 싶어요. ‘치인트’는 절벽 끝에 선 저를 구해준 드라마고 ‘환절기’는 처음이 많았던 영화예요. 처음으로 출연제안 받고, 포스터에 등장하고, 큰 비중의 배역을 맡았거든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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