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도 고요한 삶을 한 획씩 써 내려갑니다.
서예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자 서예는 아니고 한글 서예인데, 우리말이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현시점에서는 한글 서예가 더 하고 싶었다. 정갈하게 한 획씩 그어나가는 순간이 내면의 생각을 정돈해 준다.
난 20년간 나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라는 사안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으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나 그대로의 성질이다.
영어를 가르치다가 사람의 성질, 특성은 of을 쓴다는 개념을 보게 되었다. 사람의 성질은 참으로 다양했다.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샛노랗다, 누리끼리하다 등의 색을 하나의 단어로 치환하는 영어도 이렇게 사람의 성질에 관한 단어들이 많은데 한글은 얼마나 성질에 관한 단어들이 많을지 생각했다.
클래식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풍경을 보며 풀과 나무를 기르고, 동아리 시간에는 서예를 하는 그런 잔잔하고도 담백한 삶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문학회에서는 오랜만에 학교 사람들과 문학에 대한 깊은 대화를 하며 내 갈증을 풀기도 하고, 과외를 준비하면서는 주과목을 찬찬히 공부하며 머리를 맑게 하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
내 근본적인 우울과 낭만을 노래를 들으며 과감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거나 신나면 길을 가다가 빙글 빙글 돌아보기도 한다. 나 외의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는다. 내 온전한 성질을 생각하고, 고려하며 또한 존중한다. 간단하고 건강한 요리로 나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때로는 어려운 요리에 도전하며 그 과정을 기억한다. 열심히 소스를 만들고 옷과 얼굴에 양념이 튀지만 한 요리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기억한다.
저녁에는 스트레칭과 간단한 운동을 하며 부족한 내 체력에 왜 이렇게 힘이 없냐며 괜스레 말을 건네기도 하고, 꾸준한 명상을 통해 나를 비워낸다. 집안일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손빨래를 하면서는 향긋한 비누와 세재 향을 느낀다. 물에 닿는 내 손의 촉감을 가만히 앉아 되새기고, 글감이 떠오르면 연필을 꺼내 끄적인다. 드라마를 보며 여유를 즐기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할일이 끝나면 어두워진 바깥을 보다가 음료수를 직접 만들어 마시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적당한 따뜻함의 물에 노곤한 몸을 맡기고 온갖 향기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하루가 또 흘러간다. 바다의 흐름처럼, 때로는 폭풍의 흐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