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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Sep 01. 2024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California dreamin' 카스에게 바침

그녀가  사라졌다.

그리고 개를 남겼다.


S쇼핑몰이 발칵 뒤집힌 건, 그녀가 사라진 36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녀는 S쇼핑몰의 50개가 넘는 업체의 계주였으며, 엄마의 절친이었다. 5년 전, 우리 가족은 신림동 모텔촌 옆 낡은 다세대의 반지하로 이사를 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쫄딱 망한 집구석이 돼, 담쟁이넝쿨이 치렁치렁한 귀곡 산장 같은 이곳까지 숨어든 것이었다.


아빠가 망쳐버 가계를 일으키느라 엄마의 어깨와 얼굴은 화석처럼 굳어 버렸고, 나는 땅만 보고 걷는 게 일상인, 만성 요통환자였다.  서, 우린 집에서 가장 가까운 K한의원에 그렇게 운명처럼 드나들게 됐고, 그녀를 만나게 됐다.


한의원은 붉은 벽돌 건물 일층에 자리했는데, 앞을 지날 때마다 한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그녀는 동네 유지였던 한의원집, 안주인이었다. 삼층 상가건물 일층이 한의원, 2,3층은 내외와 자식들이 살았다.

피부가 뽀얗고 작은 얼굴에 반달눈에 아담한 코와 인중을 지닌, 그녀는 예뻤다. 예쁜 얼굴에 비해 걸쭉한 목소리와 호탕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예쁜 척 돈 많은 척 안 하는 핵인싸의 전형이면서, 동네 아줌마들의 워너비였다.      


신림 5동, 모텔촌 뒤로 난 원룸과 다세대가 난립한 이 동네는 S쇼핑몰을 사이에 두고 주민들 간의 소통과 애증이 오갔다. 두 블록쯤 올라가면 보라매 공원이 있는데, 저녁을 먹고 산책을 가면 배드민턴을 치던가 맨발로 트랙을 돌거나, 소나무에 배치기를 하고 있는 동네 주민들을 항상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K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S쇼핑몰 사우나에서 때를 미는 사람들이었다.     



본처가 죽고 초등학교 다니는 남매를 둔 한의사 아저씨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한의원에 진료 온 그녀와 뜻이 통했고, 바로 재혼을 했다. 그녀는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15년 동안.     


그녀의 사기 행각은 방송을 탔다.     


그런데, 우리 집만 이일에 쏙 빠져 있었다.

다행히 우린 빌려줄 돈이 없었고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해도 없었다. 다만 우리에게 남긴 그녀의 개 때문에, 언젠가 한 번쯤은 나타나 개를 찾아가지는 않을까 호시탐탐 우리 집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몇몇이 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잊혔다.     


그녀의 인생은 전부 가짜였다. 이름도, 나이도, 가족관계도 그 모두가.

고위공무원을 하고 은퇴한 아버지, 국악을 전공한 엄마, 언니 둘은 모두 교수라고 했었나. 이들 모두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었고. 모두 미국에 이민 가 살고 있으며 자신은 친정과 다툼이 있어 얼굴을 안 보고 산지 꽤 됐다는 정보는, 의심이 간다 해도 사람들은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학력 콤플렉스를 지닌 부모 세대는, 잘못한 것도 없이 ‘미국’이나 대학 이야기만 나오면 코가 죽었으니까. 게다가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로열패밀리 아닌가.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동네의 모든 모임은 해산됐고 여기저기서 경찰의 심문이 이어졌다.      


그녀는 이른 아침 고등어를 굽다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런 어설픈 도주극이 있을까. 처음엔 납치된 게 아닐까 한의사가 실종신고를 했는데, 유령인물로 조회가 됐고, 한의사는 경찰 앞에서 덜떨어진 표정으로 멍하니 있다가 컴퓨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 전 첫돌을 맞은 손녀의 전인교육 운운하며 영어비디오CD를 구매하기도 했고, 유기농이유식을 만든다고 노량진까지 나가 서점에서 요리책까지 사온 바 있었다. 그리고 그 동선엔...... 내가 있다. 나는 아줌마와 종종 서점에 갔었다. 아줌마는 내게 책을 사줬고, 나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책을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물리치료를 할 때마다, 커튼 뒤로 내외가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들려왔고, 나는 아줌마 친정 캘리포니아이며, 그곳이 얼마나 살기좋은곳인지  속사포처럼 떠들어대는 그녀의 캘리포니아 찬가를 들어야만 했다. 


한때 나는 미국에 불법 체류라도 해서 이 땅을 떠나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그녀의 여행가방에라도 들어가 이곳을 떠나는 상상을 하곤했다. 녀는 내게도 워너비였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애견 카스는, 물리치료실 침대 맡을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진료 중에도 종종 개를 풀어놨는데, 단골들은 그녀의 애견에게 친절했다. 개에게는 좋은 향내가 났다. 반지르르한 털 바닥에 끌릴 정도였는데, 아줌마는 개나 사람이나 ‘타고난 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타고난 대로 멋지게 사는 개와, 나와의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는가, 신림동에서 캘리포니아만큼의 거리인가, 멍했던 순간이 있었고.    


검은 털이 귀에서 가슴까지 윤기가 렀던 개. 한의원집 마당과 실내를 오가며 살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대는 통에 저녁이면 목이 쉬어 있던 개. 열 살이 넘은 노견이면서, 각종 신발을 신고 다니던 동네 유일무이했던 개.     


그녀는 그렇게 이른 아침 개현관 앞에 놓고 사라졌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범죄자의 범죄견과 함께 불안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게다가 카스는 한우에 꼬리곰탕을 주식으로, 여름엔 망고를 간식으로, 그리고 여름과 겨울 두 번 동충하초를 넣은 보약을 먹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개였으므로 우리는 이 개를 어떻게 돌봐야 할 것인가 가족회의를 할 지경이었다.     


코딱지만 한 집이었고, 개 집을 놓은 자리가 없었다. 눈치 없는 금수저 개 카스는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화장실 앞 발판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그 자리가 제일 시원했다.

녀석은 첫날 짖지도 않고 종일 발판에 엎드려 있거나, 현관 앞에서 문을 박박 긁었다. 그러다가 담날부터 다시 짖기 시작했다. 동네 떠나가라, 내 알 바 아니다 이런 식.     


그녀로 말하면, 기브 앤 테이크가 안 되는,  우리 가족을 챙겼다.  

일 년에 두세 번 언니와 내게 용돈을 줬고, 언니가 대학에 붙었을 땐 밤늦은 시각 분홍 봉투에 영어로 congratulation이라고 써서 십만 원을 줬다.


한 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고먹는 내게, 지금 많이 놀아놔야 나중에 큰일 한다며 내 사기를 진작시켜 줬고 공진단 세 알을 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었다. 힘든 엄마 등골을 뺀다며, 뒷담을 일삼는 일군의 무리들에 점점 지쳐갈 즈음이었다. 나는 공진단을 씹어 먹으며 그녀가 정치를 한다면, 큰 정치를 할 사람이고, 나는 꼭 그녀의 후원회장을 하리라 생각했다.     



경찰이 한의원집에 깔리고 내사를 하고 그런 지리한 시간들이 있었고 딸들은 아버지와 절연을 했다.

상가 건물 빼고 돈 되는 건, 다 사라졌다고 했다. 딸들은 아기들을 키우면서, 그녀가 뭔가 이상한 가스라이팅이나 수상한 걸 먹인 건 아닌가 전전긍긍했다고.     


여하튼 더위가 한풀 꺾이고 오랜만에 카스를 데리고, 보라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길이었다.

길에서 만난 한의사 아저씨는 병색이 짙어 보였다. 그가 카스와 딱 마주쳤을 때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눈은 화염방사기가 돼 개와 나를 단박에 태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얼른 카스의 목줄을 끌고 총총 사라졌다. 자꾸 뒤돌아보며 전주인에게 가려는 카스를 나는 꼭 안아주기까지 했던, 그 서늘한 만남이라니.     


엄마는 카스에게 신발을 신겼다. 이 불편한걸 왜 자꾸 신기나 모르겠네, 하면서도 그녀가 놓고 간 신발을 제대로 신겼다. 꼬리곰탕을 먹이지는 못하지만, 신발은 신겨야겠다는 소심한 의리의 발현이랄까.      


그런데 녀석은 참, 꼿꼿하게 잘 걸었다. 불편한 기색 없이.

영광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신발들. 아무튼 나는 저녁밥을 먹으면 카스를 데리고 부지런히 산책을 나갔다.


그곳엔 여전히, 배드민턴을 치거나 배치기를 하거나 맨발로 경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서로 먼산을 쳐다보는 듯, 매가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와 카스를 못 본 척했다.       


몇 년이 지나고, 엄마는 관악산 연주암가에서 그녀와 비슷한 이를 봤다고 했다.

빨간 바지에 페도라를 쓴 여자였고, 뒷모습만 봤는데도 그녀일 거라, 알았다고 했다. 남녀 무리 속에서 크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는 그녀. 목소리가 특이했잖아. 그리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렇게 카스는 일 년 반정도 우리와 함께 살았다. 화장실을 가려면 녀석을 펄쩍 뛰어넘어야 했고, 국에 섞인 녀석의 털을 종종 발견했지만 우린 모두 그러려니 했다.


나는 녀석에게 특별히 사거리에 있는 가장 큰 동물병원에서 사료를 사다 먹였고, 일주일에 두세 번 비엔나 소시지도 먹였으며, 매일 해 질 녘엔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털은, 내가 잘라주었다. 카스의 털이 뚝뚝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조금 슬펐다. 그래서 밤중에, 하나뿐인 선풍기를 카스 앞에 놔주었다.     


가판마다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고, 신림 사거리 역사 밖으론 수업을 마친 대학생들과 퇴근하는 회사원들이 투구벌레처럼 밀려 나왔던, 그 시각.


나는 카스와 함께 역사 앞 가게 의자에 앉아 메로나를 먹으며 사람 구경을 했다.


카스와 있으면 굽었던 어깨가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시절

당당한 개, 카스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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