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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Sep 08. 2024

명태포를 찢어 주려고 했었어

1992년 몽실이

   

나는 '개꿈'을 삼십 년째 꾼다.

가는 그럴 테지. 무슨 개 한 마리 키운 걸로, 꿈을 삼십 년째 꾸냐고.     

 꿈을 꾼 날은, 베갯잇이 축축하다. 그리고 종일 맘이 무겁다.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다.

청소를 하며 일부러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던지, 먼지 쌓인 실내사이클의 페달을 신나게 돌린다던지, 배달의 민족 배달원에게 큰소리를 인사를 한다던지.  그렇게 외계인처럼 군다. 

그 개꿈의 주인공 이름은 '몽실'이다.

          

동생이 사고로 죽고, 아빠는 단박에 알콜릭이 돼서 좀비처럼 새벽마다 동네를 어슬렁거려 동네 주민들을 놀래키는 인물이 됐고, 엄마는 옆에서 누가 큰소리로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먹는, 나이 마흔 반에 심각한 난청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주걱을 냉동실에 넣거나, 내 이름을 언니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색깔 다른 양말을 신고 서 있는 걸 보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허둥댔다. 그래서 나는 이 무너지는 집을 어떻게든 살려봐야겠다 맘먹고, 출근이란 걸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건너 건너 선배가 소개해 준, 천호동에 있는 인테리어 사무실이었다. 직원은 나 혼자뿐이었는데 전기와 배관을 담당하는 부장 한 명, 오더를 따오는 과장 한 명, 그리고 물주 사장 한 명. 사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부장과 과장이 일주일에 번갈아 가며 한 번씩 사무실에 나와, 백반을 시켜 먹고 가버리는, 그런 곳이었다.      


사무실은 옆 헬스장과 가벽으로이뤄진, 방음이 안된 종이상자도 아닌 뭣도 아닌 것이었는데 가벽 너머에 있는 헬스에서 하품하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현대판 비닐하우스인가 싶은 얇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어둠의 세계에 등장하는 사내들이 드나들었다. 주먹으로 벽을 한번 내치면 간단하게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내 겁에 질린 얼굴을 전면에 마주할 법한, 그런 만화 같았던 공간.


출근할 때 계단으로 붉은 카펫에 둘둘만 원통형 물건을 자주 실어 날랐던 사내들을 보며, 나는 그 안에 반드시 시체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헬스장으로 위장한 심부름센터인데, 사고로 사람이 죽은 현장을 말끔히 치워주는 해결사들이 있는 곳.  


이 부장이나 황보과장이 귀가 닳도록 사무실문을 잘 잠그고 있으라고 한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종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촉각을 세웠다.

걸려오는 열 통 남짓한 전화를 받고 부장과 과장에게 연결해주고 나면, 남는 시간 내내,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분석하고 사고를 확장하느라, 시켜놓은 백반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도 모자라 퇴근할 무렵에는 신경계 힘줄이,  활시위처럼 끊어질 듯 띵띵 소리를 내는 거 같았다.


내가 위험해 처할 때, 그나마 나를 구해줄 사람은 대걸레를 든 청소 아줌마뿐이었으므로, 나는 아침에 요구르트나 보름달 빵을 하나씩 들고 와 아줌마에게 주는 걸로 소소한 자기 방어 걸 하기도 했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없지만, 나는 매일 훅과 스트레이트를 연속으로 타격당하는 가상 고통에 시달렸다. 그래서 퇴근할 무렵엔 흡사 노가리처럼 찢긴 기분이 들었다. 터벅터벅 신림역사 6번 출구를 걸어 나오던, 저녁 7시 무렵이었다.

그날 출구 계단에는, 사계절 내내 찌든 낚시 조끼를 입고, 이태리 때타월과 손톱깎이, 고무줄, 옷핀 같은 잡화를 팔던 아저씨가, 라면 박스에 강아지를 들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시골개 파라요. 한 마리 만 원. 

    

활달한 두 마리는 박스를 기어 나오려고 하고, 나머지 애들은 서로 엉켜 잠들어 있었다.

두 마리는 하얀색에 작은 점박이고 두 마리는 그냥 하얀색, 그리고 한 마리를 검정개였다. 발바닥과 눈주위만 하얀 털이 살짝 비쳐있고, 눈의 흰자위가 까만 털에 둥둥 떠있어, 푸른빛이 났던.

"어머, 얘들 봐 너무 귀엽다." 그러잖아도 복잡한 출구였고,  강아지를 한 번씩 만져보고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얀 개들은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손을 탔고, 까만 개만 귀퉁이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나는 그 개를 바라봤다. 이런 새끼 강아지들 사이에도 서열이란 게 있나. 나는 까만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는 내게 기술을 걸었다.

"지금 데려가면 이만 원!"

하면서 까만 개의 등가죽을 잡아채 내 눈앞에 대롱대롱 보여줬다.

나는 삼만 원을 다 줬는지 아니면 아저씨 말대로 이만 원만 줬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엄지와 검지에 침을 묻혀 검정 비닐봉지를 벌려 그 안에 까만 개를 당근처럼 넣어 내게 건네줬던, 니코틴 쩔은 그의 이빨과 뭉툭한 손톱이 기억날 뿐.


방학이라, 잠시 집에 왔던 언니가 개를 보자마자

"어머 얘 왜 이리 귀엽니? 몽실몽실하네"

라고 말을 해줘서 나는 기뻤다. 그래서 까만 개는 첫날부터 '몽실이'가 됐다

        

몽실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싶었을 테지만, 살이 찌지 않았고 작았다. 나는 그 이유가 햇빛을 보지 못해서라고 생각을 했다. 집은 어두웠고 낮엔 겨우 한 줌 햇빛이 들어오는데, 그마저 종일 누워있는 아버지 차지였다. 그래서 나는 출근하기 전, 몽실이에게 엄마가 간밤에 사다 놓은 보름달 빵과 삶은 계란을 작게 잘라 놔 주는 걸로, 가책을 덜었다.     


당당했던 카스(몽실이 전에 키웠던 개)에 비하면 몽실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사부작 걸어 다녔으며, 짖지도 않았다. 엄마개에게 떨어져 나오며 학대를 당했던 것일까. 아니면 하양이와 점박이들 사이에서 혼자 이만 원에 팔려, 태생적으로 기가 죽은 것인가. 그런데 가엾게도 이렇게 몰락한 집으로 들어오다니.      


나는 그 시절 맘속으로는 눈물 콧물을 디룽거리며 살았는데 커가는 몽실이를 보면서,  작은 기쁨이랄까 희망이랄까 하는 긍정적인 기운을 얻었다. 웃을 일이 없는 집안이 까만 몽실이 덕분에 환한 빛이 드는 기분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40대 아저씨처럼 호탕하게 웃었고, 노래방에서는 서태지의 노래를 장난 삼아 옥타브를 올려가며 부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가끔 몽실이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

어차피 부장과 과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어왔고, 이전에 그만뒀던 직원도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내지 못했다는 걸 알았던 차라, 그들은 몽실이의 방문을 허락했다.


바야흐로, 가을이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9시부터 11시까지 팝을 들었는데, 그날 들었던 곡이 'Early in the morning'이란걸 나는 98년도 임창정 주연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ost)을 보면서 알았다.


음악이 경쾌하니 몽실이가 갑자기 사무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뱅그르르 꼬리 잡기를 하거나, 창가에 올려놓은 선인장에게 멍멍 짖었고, 폴짝폴짝 뛰었다.

몽실이의 꼬리가 바람개비처럼 휘휘 돌았고,

나는 느슨한 신경계의 힘줄 때문이었나, 휘파람을 불었던 거 같다.(나는 휘파람을 아주 잘 분다)

 

Evening is the time of day

하루 중 저녁이 되면

I find nothing much to say

난 말이 별로 없어져요

Don’t know what to do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But I come to

하지만 아침이 밝아 오면     

When it’s early in the morning

이른 아침이면

Over by the window day is dawning

창문 너머로 날이 밝아 오고

When I feel the air

아침 공기를 마셔보면

I feel that life is very good to me

내 인생도 살 만한 거라고

you know

생각하게 되죠


나는 몽실이가 추는 춤을 까무룩히 바라봤다.

바람개비가 팔랑거리는 거 같기도 했고, 봄날 이른 아침 햇빛을 처음 발견한 아이가 놀라서 파르르 떠는 느낌이기도 했다.


지나고 나서, 나는 그날의 몽실이와 나의 이른 아침의 한때가 실제 었던 일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겐 무아의 기쁨이었고, 우리 둘 사이엔 정글 속을 유리하다 이곳에서 드디어 만나게 됐구나, 하는 결속감 내지는 충만함. 그런 게 분명히, 있었다.       



몽실이를 데리고 신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사무실까지 가는 여정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엔, 개를 데리고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나는 바람막이 사이로 아이를 숨기고 맨 뒷자리 가거나 가방 깊이 아이를 넣었다.

간혹 버스기사가 알아차린 날은 갖은 욕설을 들으며 연고 없는 정거장에 버려지기도 했다.  

    

함께 출근하지 못한 날의 몽실이는 작은 창고에 갇혔다.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고, 갑자기 포악해진 아버지의 발길에 차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모텔 촌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집은, 가끔 술꾼들이 드나들며 소변을 봤고, 경찰차가 수시로 드나드는 할렘가 비슷한 곳이었기에, 나는 창고에 아이를 넣고 문을 열쇠로 잠그고 나갔다. 열쇠로, 문을 잠글 때 몽실이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작은 창이 하나 있었지만, 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창고에 불을 켜주고 싶었지만, 전기 배선을 따려면 돈이 들고, 엄밀히 말하면 주인집 창고였으므로, 나는 플래시를 몽실이 방석 옆에 놔주는 걸로 착잡함을 달랬다.

     

혼자 있을 몽실이 생각에 집에 돌아올 때면 맘이 급해졌다. 마주치는 모든 계단을 두 개씩 뛰었고, 지하철이나 버스가 연착이 되면,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헐레벌떡 도착해 창고 문을 열면 온통 까만 사위에, 플래시의 불빛과 몽실이의 하얀 눈이 함께 빛났다. 몽실이는 나를 보자마자 두 발로 서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쌕쌕거렸다.      




헬스장 사내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나는 두려움에 가까스로 문을 열고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러시아 스킨헤드를 표방한 사내가 내게 뭔가를 쑥 내밀었다.

"개 키우죠? 이거 혹시 먹을까 해서."     

명태포였다.     

본인도 집에서 개를 키우는데, 이걸 찢어 주면 잘 먹는다고 한번 먹여보라고 했다.

그리고 평소에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깍듯하게 내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해결사와 오해를 풀고 명태포를 든 채 집에 온 날이었다.


창고 문이 열려 있었다.

건전지가 닳은 플래시의 흐릿한 빛만 덩그러니 있을 뿐, 내 몽실이가 없었다.     

나는 대문을 열고 뛰쳐나가,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아무나의 팔을 종이인형처럼 잡고 흔들며 까만 개를 봤냐고 떨며 물었다.


배구공으로 족구를 하던 초등학생쯤 보이는 남자애가 나에게 걸어왔다.

"어떤 하얗고 큰 개가 까만 개를 데리고 갔어요."


그게 끝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에 또는 밤늦은 시각에 몽실이를 찾아 우리 동네와 옆동네와 그 옆옆 동네를 헤맸다.

그리고 아무나 잡고, 하얗고 큰 개가 데리고 가는 작고 까만 개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개 한 마리 잃어버린 걸로 이렇게 매일 눈물바람을 하고 다니냐며 형제슈퍼 아줌마는 혀를 끌끌 찼다.



우리 집은 깊은 늪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좀비처럼 헤매던 거리를 내가 다시 개를 찾느라 그 길을 헤맸고, 어머니는 숨을 데가 없는 작은 집에서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밤마다 작게 흐느꼈다.

어셔가의 몰락이 따로 없었다. 세트장도 필요 없이 바로 이곳에서 크랭크인 가능한, 괴괴함이 흘렀다.


엄마도 아빠도 집 나간 개가 어디로 갔는지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에 관한 비밀을 모두 알아버린 뒤였기 때문이었을까.

 

우린 서로의 탓이라고 악을 쓰다가 종국엔 제살을 뜯어먹는 에리직톤의 초상(이승우 소설 제목)이 돼, 가까스로 버티며 살아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나는 작은 몽실이의 바람개비 같은 꼬리를 잡고 살아내는 중이었는데......


그러니까 그 명태포를 굽고 작게 찢어서 나는 몽실이에게 꼭 먹이고 싶었었다.

그 창고문을 열어준 사람이 혹시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매일 당신을 나몰라라 하고 내가 개에게만 나눠준 사랑을 질투했을까

혹은 개를 키우는 걸 싫어했던 집주인의 눈치를 보느라 급급한 엄마의 만행이었을까

아니면

취기에 드나들던 술꾼들이 장난 삼아 문을 열었던가

아니면 내가 창고문을 그날 잠그지 않고 나갔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삼십 년 동안 같은 꿈을 꾼다.     

어떤 때는 녀석이 자주 찾아왔고 어떤 때는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왔다.

마당에 서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거나

창고에 앉아있거나

하얗고 큰 개를 따라 어딘가로 가는 뒷모습만 보여주거나

배를 곯았는지 침을 흘리기도 한다.


내 손에는 삼십 년째 명태포가 들려있었나



나의 사랑하는 몽실 양.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부디 봄햇살 드는 환한 곳에서

바람개비처럼 살고 있기를

언니는, 바래.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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