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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꼴 Aug 25. 2024

개를 찾습니다

웃는 개, 해피

우리 집 두 번째 개의 이름은 해피다.

해피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겨울이었던 건 분명하다. 엄마가 내 작아진 겨울 옷과 담요를 들고 마당 나 개 앞에서 한참 부스럭거렸고  쌓인 밥그릇을 털어줄 때  소리가 났으니까. 엄마는 누렁이가 죽고 나서도 밥그릇을 치우지 않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엄마만의 추도방식이라고 할까.

그날부턴지 아님 그 이전부터였는지 누렁이가 살던 집에, 낯선 개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우린 모두 놀랐지만 엄마는 별일 아니란 듯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이고 씻겼다. 개는 이미 한 달 전부터 기웃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걸어 들어와 빈집에 들어앉았다고 했다. 


우리 누렁이는 눈이 오면 가장 먼저  마당에서 폴짝거리며 호들갑을 떠는 개였다. 그 바람에 줄이 자기 몸을 둘둘 감는 줄도 모르고 나중엔 비명을 질러대며 우릴 출동시켰던,  촐랑이 었다. 한데  도둑는 집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않았고, 모두가 잠든 밤에  소리 없이 우적우적 밥을 먹고 기어들어 종일 잠만 잤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누렁이 자리를 공짜로 꿰찬, 심각한 바이러스를 지녔을지도 모를  저 음침한 그 녀석을 '해피'라고 불렀다. 름도 뜬금없었지만, 오래전부터 키워왔던 개처럼 대하는 엄마의 태도가 상했다.

어쨌든 몰래 들어왔으니 또 금방 사라지겠지, 가족 모두는 엄마만큼 애정을 주지도, 해피란 이름에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엄마 쟤는 어디서 왔어?"

"쟤가 아니라 해피야 해피."



그랬던 개가 사라졌다.

"개 어디 갔니?"

일이 끝나고 들어온 엄마가 해피 밥그릇을 손에 든 채, 언니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날 만화가게에서 황미나의 신간 '이오니아의 푸른 별'을 읽다 미스코리아 결선을 보러 부랴부랴 돌아왔고,  언니는 베개를 높게 벤 채 귤을 까먹으며 미스코리아선발대회를 보고 있었다. 우린 급하게 둘이 눈을 마주고 그날 하루종일 해피를 본 적이 없단 걸, 알았다.

순간 성질 급한 마가 있는 힘껏 던진 해피의 밥그릇 투포환처럼 빙그르르 날아가 문짝에 맞고 쨍그랑 떨어졌다. 사방으로 튄 주인 잃은 밥알들, 마의 희번덕한 눈동자 때문에, 의 부재는 우리에게 잔혹한 현실이 되었, 그렇게  해피 찾기가 시작됐다.



언니와 나는 엎어진 밥알을 줍다가, 엄마의 불호령에  울면서 집 밖을 튀어나왔다. 그리곤 반사적으로 시장 쪽으로 발짝을 옮겼다. 리고 누가 먼 저랄 것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현대시장에서 500미터쯤 쭉 걸어 내려와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영양탕집들이 집성촌처럼 모여 있었고, 커다란 스테인리스 쟁반에 널어놓은 익힌 개머리와, 갈고리에 걸린 분리된 몸통들이 갈빗대드러낸 채 대롱대롱 걸려있었다. 그 갈빗대는 마치 피아노의 해머레일 같아, 누군가 페달을 밟으면 자신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기이한 음으로 변주할 거 같은 공포를 자아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굽거나 태운 살냄새.


학교 가는 길에 마주치기 싫어, 먼 길로 돌아다녔던 그곳.

식용견이 되기 위해 대기하는 개들 간이역, 그리고 버려지거나 길을 잃은 개들의 종착역이 되기도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그곳을 향해, 우리는 고 있었다.


그곳엔 아직 휘장을 치지 않은 가게들이 노란 백열등 아래 영업 중이었다. 이 밤중에 영양탕을 파는 가게들이 성업한다는 건 묘한 인상을 주었다.

우린 쇠철창 안에 갇혀 있는 개들 사이로 동시에 "해피야! 해피야!"를 간절하게 외치다 목 잠기기도 했지만, 사방으로 해피의 흔적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으로 키웠는데 잠시한눈 판 사이에 집나간 반려견을 찾는듯한 간절한 포효, 이름도 해피니까.

그래봤자, 문을 열고 있는 몇몇 집이었다.


"개 잃어버렸냐?"

술 취한 아저씨가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네네 바둑이고요 몸 보통이고 검정색 큰점이 등에 있고요 축쳐져 있어요 !"

숨이 턱까지 찬 언니가 해피의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냥 허공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바둑이 내가 잡아먹었다!"

하고는 꺽 소리를 게 내는 바람에, 연쇄살인마를 만난 듯 앜앜 명을 지르며 우리는 도망을 쳤다.


쇠창살 안에는 아주 크고, 적당히 크고, 보통 체격인 누렁이들과 하얗고 까만 개들이 무심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반쯤 감고 있거나 다 감고 있거나 침을 흘리거나 입이 말라있는, 영혼을 어딘가에 저당 잡히고, 몸통만 나앉아 있는 듯한 그런 개들.

두 눈을 다 감고 있는 개를 나는 유심히 바라봤는데, 개는 입을 실룩룩이며 악몽속을 헤매는 거처럼 보였다.


시장통을 걸어 나오며 우리 집까지 이어지는 길에 나있는, 집들 앞에서 다시 목놓아 '해피'를 불렀다. 언니는 해피가 짖는 소리가 났다며, 검정대문 앞에서 겅중겅중 뛰면서 마당을 들여다보려 했고,  나는 엎드린 채 대문바닥 틈새에 눈과 귀를 갖다 댔다.

우악스럽게 개가 짖었고, 우린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자정너머까지 우린 깡충깡충 뛰거나 포복 자세로 집집마다 해피의 행적을 쫓았다.



집에 돌아오며 나는 해피를 생각했다.

처음 우리 집에 무단침입했을 때의 해피는 엄마 외에 누구에게도  맘을 열지 않았 아무리 배가 고파도 엄마가 주는 밥 말고는 먹지 않았다.

엄마는 말 못 하는 동물이 가장 가엾다며, 셋집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해피의 줄을 가끔 끌러 주었만 개는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딱 자신이 어부지리로 차지한, 그 공간만큼의 자유면 충분하단 듯이.

너무 조용해서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없었던 개.



엄마는 자정이 다 된 시각에 꽁꽁 얼어붙어  들어온 우리를 향해, 몽당 빗자루를 던졌다. 빗자루뿐 아니라, 세간살이를 다 던질 기세였다.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만 우리 잘못이기도 했다. 가방을 던져놓고 만화를 보러 갈 때, 해피를 잠깐이라도 확인했더라면,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얼마 전,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져 갈 때였다. 

느닷없이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해피가 자신의 개라고 말했다.

남자는 해피의 오른쪽 귀가 왼쪽귀보다 짧은 것 또 배에 붉은 반점이 서너 개 또렷하게 있고 눈의 흰자위에 빨간 점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떠돌이개가 이 집에 들어 있단 소리를 건너 형제문방구 아저씨에게 들었고, 처음엔 대문가에서 개를 불러봤는데 나오지 않아서 마당까지 걸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피의 진짜 이름은 '바둑이'라고 했다.

남자는 개집 앞에 서서 바둑아, 바둑아 하며 손짓을 하다가 혀로 쯧쯧쯧 거렸고, 한참 불러도 미동도 않는 해피를 보고 더 이상은 점을 빼지 못했다.

이만큼 했으면 많이 참았다는 식으로 굴이 불콰해져선 발을 쿵쿵 구르며 주인도 못 알아보는 호로 개라며 욕을 고, 성질을 못 이겨 담배를 폈고 뭉근한 가래를 개집 앞에 뱉었다.

 

그때였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아저씨가!

엄마가  방심한 남자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훅 밀었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밀렸고

아니 이 아줌마가 미쳤나!

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개싸움(개를 놓고 벌이는 싸움)은 그 동네에 사는 동안 내내 그리고 우리가 이사를 나가고 나서도 오랫동안 회자됐다고 전해진다.

( 엄마가 아저씨를 몇 대 쳤으며 남자는 일방적으로 맞았다며 합의금을 종용했고, 엄마는 해피를 넘기는 조건으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날, 남자가 떠나고, 한참 후에 해피가 집에서 나왔다.  어둑어둑고 콧등이 시렸던 밤.

 마는 나한테 따뜻한 물을 데워오라고 시켰는데, 그 물에 팔 뒤꿈치를 대보고 찬물을 골고루 섞었다.  세숫비누로 얼굴을 닦아 줄 땐, 눈에 거품이 들어갈까 엄지와 검지로 감긴 눈을 옆으로 쭉쭉 밀어가며 거품이 들어가지 않게 했고,  등짝을 살살 쓸어줄 땐

뭐라고 뭐라고 자꾸 개한테 말을 건넸다.

평소보다 훨씬 나지막하고 다정했던 목소리였던 걸로만 기억이난다.

 

그때 나는 처음 보았다.


 원래는 분홍빛이었을 등짝이  피딱지 때문에 얼마 전 시장에서 사입은 엄마의 진자주색 누빔치마랑 비슷한 빛으로 더깨가 껴있었고, 굽은 등 사이로 보이는 갈비뼈는 앙상해서, 숭 바람이 드나들 것만 같았다. 

벗겨진 콧가죽과 까무룩 한 눈. 어두운 시절 '둑이'의 이력이었다.


그날  해피는 의 정성으로 굽었던 등과 갈빗대에는 살이 붙었고 콧잔등은 까매졌으며, 무엇보다 우리 가족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언제나 씻기고 나서 마지막엔 타월에 싸안고 간지럼 태우듯 털을 말려주었는데 그건 내 담당이었다.

린 번갈아 털이 빠진 부위를 찾아 약을 발라주고 마지막엔 베이비파우더를 등짝에 톡톡 두드려줬다. 분가루를 뿌리고 나면 방안에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가득했다. 파우더를 왜 우린 해피의 등짝에 매번 두드려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뭐랄까 한가족이 됐다는 숭고한 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우리가 부여한 행운의 주문 같은 거였다.

 

간혹,

엄마가 해피의 주둥이를 모아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고 눈을 추는 장면은, 엘리엇 ET손가락 우정씬과 몹시 흡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면 해피는 파우더 향을 풍기며 웃었다. 그렇게 느꼈다.

우린 해피와 그렇게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가던 중이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새벽이었.

밖은 군가 관악산 정상 불꽃바위에 올라앉아 솜뭉치를 아무렇게나 마구 뜯어서 투하하는 듯, 온통 하얘서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 갔다.

그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그 소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리고 다시한번

컹! 컹! 컹!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마당눈밭을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있었다. 해피였다.

돌아온 해피의 이야기는 입소문을 타고 시장통까지 퍼져흘렀다.

그리고 셋집 사람들은 해피처럼 영리한 개는 없을 거라고 몇 날며칠 해피의 행적에 관해 추측을 해댔다.


풍문은 풍문대로 우린 그냥놔두었다.

해피가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 돌아왔는지 우리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해피는 체로 해피였으니까

언니와 난 해피를 서로 씻기겠다고 난리였, 씻긴 날은 안방에서 데리고 자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이불 속에 넣어놓은 개의 등짝을 언니와 난 가끔씩 더듬었고,


상처가 지나간자리에 손바닥을 가만히 올려놓았다.

그곳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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