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아버지가 고아라면?

보육원출신 아빠

여러분의 아버지가 고아라면?


세 자녀 중 막내가 여덟살 때의 일이다. 해마다 정리해 둔 아기 때 앨범을 가지고 왔기에 예전 사진들을 보면서 추억에 잠기게 되었다. 첫째와 둘째와 달리 바쁘다는 핑계로 막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예전 사진들을 보면서 훌쩍 자란 아이를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둘째는 어느 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그림을 하나 그려왔다. '아빠, 이거 어때? 잘 그랬지?' 하며 신이 난 딸 아이의 그림을 보면 꽤나 소질이 있어 보여 칭찬을 해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찌나 기뻐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지 나도 덩달아 기쁜 마음이 든다. 만약 이 아이에게 그림을 그려도 보여줄 사람이 없다면, 열심히 그린 그림에 칭찬 한 마디 받지 못한다면 아이는 얼마나 실망할지 차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중학생인 첫째는 공부에 대한 질문을 종종 한다. 요즘은 영어 공부에 열심인데, 쉬운 단어라도 깜빡할만한 단어들을 내게 물어보며 공부를 하니 자연스럽게 대화도 늘어가고 아빠에게 질문하면 쉽게 답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공부에 더욱 재미를 들이는 것 같다.


결혼 이후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들이 태어나 지금까지 15년 넘는 시간동안 아이들과 아빠,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 참으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리 집은 대부분 즐거운 일, 기쁜 일들로 웃음이 가득하지만 때로는 엄격한 아빠로서 아이들이 그릇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하지만 살다보면 늘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기도 해서 후회를 할 때도 있다.


문득 아이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없었더라면, 부모가 없었더라면 아이들과 나누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은, 또 추억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갑자기 조금 아찔해졌다.


추억이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함께 누리는 것, 그 안에서 웃음 짓고 때론 눈물도 지으며 함께인 것을 다행으로, 추억이 만들어진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런 추억을 나눌 부모가 없다면, 그 누구와도 아무런 추억도 나눌 수 없다면 그 자체는 매우 슬프고도 충격일 것이다. 아이들이 걱정하나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을 때면 안도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어린 시절에 저렇게 환하게 웃었던 적이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후원자 분들께 정말 큰 선물을 받았을 때 환하게 웃어본 적은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좀처럼 웃을 일이 없었다. 지금의 이러한 나의 밝은 에너지는 어릴 때의 어두운 기억을 만회하고자, 더욱 긍정적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밥이나 물건을 사주는 것 보다, 아빠의 따듯한 칭찬 한마디가 이들을 웃게 하고 가까운 곳에 함께 지낸다는 사실 만으로도 안정감을 전해 준다. 결국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응당 가져야 할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 중심이 아닌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부모라면 당연히 자녀들을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사랑하겠지만, 혹시라도 이혼을 앞두고 있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려고 고민하는 부모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과의 정서적인 관계, 유대감을 꼭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칭찬을 아끼지 말고, 아이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아이의 인격 형성에, 나아가 아이의 인생 전체에 너무도 크고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이들을 통해 나는 지난 날 나의 모습을 반추해본다. 참으로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의 아픔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며 '내가 인생을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라는 보람과,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아빠, 때로는 친구 같은 아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늘 가까이 있어 물어볼 수 있는 아빠. 아이들에게는 나의 과거보다 지금이, 아빠의 딸인 것이 더 중요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정말 행복한 고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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