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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31. 2023

[D-276] 내가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90번째 글

회사에서 팀원들끼리 모이면 꼭 나오는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로또에 당첨되면 어떻게 할지이다. 갑작스레 평생 놀고 먹고 물 쓰듯이 써도 다 쓰지 못하는 액수의 돈이 합법적으로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고 외국으로 1년간 여행을 떠났다가 온 뒤 남은 돈을 어떻게 할지는 그때부터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부터, 건물을 사서 건물주의 삶을 살겠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1억씩 현금으로 선물하고 나머지로는 투자를 하겠다, 시골에 땅을 사서 조용히 평화롭게 지내겠다, 일단 대출금부터 다 갚고 저축을 하겠다는 대답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끔씩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을 한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말이다. 워낙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로또에 당첨될 때를 위해서 액수별로 각각 계획을 다 세워둘 정도로 디테일하게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에서 하는 상상이고 실제로 로또를 사지는 않지만.


나는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그래서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갖게 된다면, 지금과 똑같은 삶을 살 것이다. 회사도 그만두지 않고, 명품이나 스포츠카를 사지도 않고, 크게 투자를 해 보지도 않고, 그냥 똑같이 살아갈 것이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고 주말에는 쉬면서. 지금과 똑같이,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여유를 갖고. 조금 더 여유롭게 일상을 보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더 많은 것들에 감사하며 조금 덜 스트레스를 받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당장 내게 닥친 일들에 급급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다면 이런 느긋함과 너그러움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나도 조금 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덜 짜증을 내고 더 배려하면서 말이다. 내가 여유가 없어서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게 짜증 대신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면서.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웃음과 감사 인사를 건네면서. 그렇게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지만 들여다보면 전보다 나아진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로또에 당첨된다고 해도 지금과 똑같은 일상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말이다. 로또에 당첨되어도 어차피 똑같은 일상을 유지할 거라면 그냥 지금부터 그렇게 살면 되는 게 아닐까? 지금과 똑같이 하루하루를 보내되 조금 더 여유롭게,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사는 데에 굳이 로또 당첨은 필요 없지 않나 싶었다. 중요한 것은 로또 당첨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모두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거였다.


그래서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지만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던 대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더 느긋하고 더 너그럽게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싶다. 나에게도 더 너그러워지고 남에게도 더 너그러워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

2023년 3월 31일,

소파에 앉아서 창 밖 소음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S 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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