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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30. 2023

[D-277]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89번째 글

흔들리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동요하지 않고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말을 들어도, 무슨 상황에 처해도, 바위처럼 같은 자리에 버티고 서 있고 싶다. 같은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싶다. 언제나 차분함을 유지하고 싶다. 빳빳이 고개를 들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다. 조금만 나쁜 소식을 들어도 계속 신경을 쓰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지 두렵고, 조금만 나를 비난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앞으로 안 좋은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조금만 있어도 덜컥 겁이 난다. 이렇게 뒤숭숭한 마음을 안고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그래서 계속 회의하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이러다 보니 여러모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된다. 내가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유독 걱정이 많고 상처도 쉽게 받는 것 같다. 평소에 생각도 많은 편이라 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생각과 걱정들에 휩싸여 더 쉽게, 더 많이 흔들리곤 한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무척이나 피로해서 좀 쉬고 싶지만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생각은 종종 나쁜 쪽으로 뻗어 나간다. 나는 최악을 상상하고 우울에 잠기고 한숨을 내쉰다. 내 심장이 두근거리며 박동하고 내 손은 입술을 뜯는다. 침착하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노력하지만 계속 머리가 딴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나는 흔들린다. 그것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런 흔들림은 이제 그만 겪고 싶다. 바람이 불어도 잔가지 끝만 조금 흔들리는 아름드리 나무가 되고 싶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흩날리고 땅에 눕는 풀꽃은 되고 싶지 않다.


흔들리고 싶지 않지만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대안을 찾는다. 쉽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솔직히 없다. 사람 성격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풀꽃이 아무리 줄기를 굵고 튼튼하게 만들려 한들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단단한 외피를 두툼하게 두르려 해도 금세 소나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대신에 너무 오래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빨리 똑바로 서는 법을 깨우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 때, 처음에는 실컷 흔들리며 허리가 마구 꺾이더라도, 이내 같은 각도를 유지하면서 안정감 있게 바람에 휩쓸리다가 곧 다시 꼿꼿하게 바로 설 수 있도록. 너무 오래 흔들리고 너무 오래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적당히 울고, 적당히 걱정하고, 적당히 불안해한 뒤, 툭툭 털고 일어나서 내 할 일을 마저 할 수 있도록.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걱정하지 않는 법은 잘 모르겠지만 걱정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빨리 벗어나는 법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받지 않는 법은 잘 모르겠지만 상처받은 뒤에 나를 잘 추스르는 법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꾹 누르며, 심호흡을 하며, 시선을 돌릴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으며, 좋은 것들을 떠올리며, 너무 오래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

2023년 3월 30일,

소파에 앉아서 TV에서 재생되는 영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Rudy and Peter Skitterian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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