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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02. 2023

[D-364]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두 번째 글

연말연초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다음 1년을 계획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어떻게 이 1년을 끝마칠지, 어떻게 새로운 1년을 시작할지를 고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특히 '어떻게 끝낼까'와 '어떻게 시작할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런 생각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포함한다. 이를테면, '올해의 마지막 영화로는 무엇을 볼까?'나 '새해 첫 노래로는 무엇을 들을까?' 같은 것까지. 나는 이런 고민을 11월 말부터 쭉 하고 있었다. 올해는 다사다난했던 해라서 평소보다 더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힘든 한 해를 보냈으니 끝맺음은 완벽했으면 좋겠어서, 또 새로 맞이하는 한 해는 완벽하게 시작되었으면 좋겠어서.


고민 끝에 나는 2022년의 마지막 영화로는 <못말리는 어린양 숀> 크리스마스 스페셜을 골랐고, 2023년의 첫 영화로는 <미니언즈> 단편 영화를 골랐다. 아무 걱정 없이 마음 따뜻하게 2022년을 보내고, 깔깔 웃으면서 2023년을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또 2022년의 마지막 노래로는 뮤지컬 <숲속으로(Into the Woods)>에 나오는 'No One Is Alone'이라는 곡을, 2023년의 첫 노래로는 퀸의 'We Are the Champions'를 골랐다. 'No One Is Alone'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작년에 세상을 떠난 뮤지컬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을 추모하는 뜻에서, 'We Are the Champions'는 2022년을 잘 견뎌내고 2023년의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이 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2022년의 마지막 말, 마지막 글, 마지막 식사, 마지막 옷차림, 2023년의 첫 한마디, 첫 포옹, 첫 구절, 첫 한 입…. 나는 온갖 것들을 고민하며 12월 31일과 1월 1일을 보냈다. 그런데 1월 2일 아침이 밝았는데도 이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1월 2일은 2023년의 첫 월요일이자, 2023년의 첫 출근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부터 이런 '특별한' 날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출근길에는 어떤 노래를 들어야 좋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내가 우스워졌다. 완벽한 1년을 시작하기 위해서 온갖 것들에 의미 부여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내가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 때려쳤다! 이런 고민은 전부 그만두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평소에 입는 대로 편한 옷과 두꺼운 롱패딩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는 노래를 듣지 않고 그냥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다 내려놓고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달력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고, 날짜니 시간이니 하는 것도 사람들이 정해 놓은 인위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사실 1월 1일은 12월 31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두 날 다 똑같이 해가 뜨고 졌고 똑같이 달이 뜨고 졌고 바람이 불었고 공기가 쌀쌀했다. 오늘 들은 노래는 어제 들었어도 같은 노래였을 것이다. 어제 입은 옷을 오늘 입고 오늘 입으려던 옷을 어제 입었어도 전혀 상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도 심각하게 모든 것을 생각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사실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는데도.


물론, 모든 의미 부여의 과정이 전혀 쓸데없는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고심해서 고른 <미니언즈> 단편 영화로 새해를 시작하며 아주 만족스럽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No One Is Alone'을 들으며 작년과 아름답게 작별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다만,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고통받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보다는 내 일상에 집중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내일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의미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일 수 있다. 오늘 내게 거대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 내일이면 아무 의미도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의미 있을 필요는 없다. 매일매일이 의미 있는 하루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의미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지금 내 상태와 내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너무 많은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찾고 간직하는 일도 나를 위한 것이고, 의미를 찾지 않고 그저 흘러가도록 두는 일도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별다른 의미 없이 보낸 오늘 아침이 아주 만족스럽다.



/

2023년 1월 2일,

거실 소파에 앉아서 잔잔한 기타 커버곡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Hilary Clar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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