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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24. 2023

[D-252] 세계 책의 날에 내가 하는 일

114번째 글

어제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었다. 나는 매년 4월 23일이 되면 나만의 작은 의식을 치른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멀리 치워 놓고 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 골라서 기대어 읽는 것이다. 피곤해서 그만 자고 싶어질 때까지. 이때 내 손에 잡힌 책은 e북이면 안 된다. 넘길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종이책이어야 한다. 이렇게 책을 읽고 있으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일이 책을 읽는 것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로.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단순히 '좋아한다'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는 열렬하게 책을 읽었다. 독서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선호하는 장르나 좋아하는 작가는 있었지만 딱히 가려서 읽지는 않았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제목이 마음에 들면, 또는 표지가 마음에 들면 그냥 꺼내서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느라 가끔씩 학원을 빼먹거나 숙제를 하는 걸 잊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왜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늘 책 속에서 빠져 지냈다.


이제는 내가 왜 그렇게 집착적인 독서를 했는지 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외로웠는데 외롭다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늘 무언가를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피할 세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 내려갔던 책들은 내 도피처였고 탈출구였다. 물론 책 속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세계가 매력적이어서 읽은 이유도 크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 스트레스 해소책 또는 도피처로서의 역할도 컸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 어린 시절이 불행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나는 운 좋게도 아주 괜찮은 유년기를 보냈다. 가족은 화목했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웠고 부모님은 나를 위해 헌신하셨고 언니와도 사이가 좋았다. 한 번도 매를 맞아 본 적도 없다. 나는 말 그대로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외로웠다. 아마 내가 유독 예민한 성격을 타고나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나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내가 왜 외로웠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이유를 찾고 있는 중이다. 왜 그랬든 간에, 내게는 늘 채울 수 없지만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 부분을 채워준 것이 바로 독서였다.


내 방 구석이나 내 침대 위에서 나는 수많은 세계를 여행하고 탐험했다. 또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친구를 만들었다. 햄릿, 돈 키호테, 장 발장, 제갈공명, 엘리자베스 베넷 같은 친구들을 말이다. 그들과 함께하며 나는 즐거웠다. 현실 속에서 현실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거웠고 책 속에서 가상의 인물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독서를 통해 나는 만족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데에는 독서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한다. 바빠서, 피곤해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게 더 쉬워서, 훨씬 더 접근성이 높고 정보량이 많은 포털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라는 다른 창구가 있어서 등등 기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4월 23일 하루만은 책을 다시 손에 잡아 보려고 노력한다. 아직 이 '의식'을 치른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종이책을 펴고 앉아 있으면 묘한 안정감과 함께 유년기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이 좋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그 안정감이 마음에 든다.



/

2023년 4월 24일,

버스에 앉아서 피곤한 눈을 깜빡이며.



*커버: Image by Susan Q Yi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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