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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15. 2023

[D-231] 오타를 고치는 것처럼

135번째 글

지난주 내내 제목에 D-day 날짜를 잘못 적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제 깨달았다. 세 자리 숫자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을 헷갈렸는지, 235라고 써야 하는 것을 325처럼 뒤집어서 쓰고 있었다. 백 일이 넘게 매일 글을 썼는데도 아직도 D-day 앞자리가 3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글 목록을 보니 일주일 전부터 숫자를 잘못 쓰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글을 수정해서 숫자를 제대로 고쳐 써 놓았다. 다행히 잘못 쓴 글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금방 고칠 수 있었다.


그렇게 오타를 수정하면서, 문득 내 삶도 이렇게 틀린 부분을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 교정을 하듯이,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고 실수한 부분은 고치고 지우고 싶은 부분은 지워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어바웃 타임>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 실수를 하고 나면 몇 초 전, 몇 분 전, 며칠 전, 몇 년 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과 다른 행동을 한다. 오타를 고치는 것처럼, 과거의 그 부분만을 슬쩍 고치고 오는 것이다.


나는 이 능력이 너무나도 갖고 싶다. 그동안 초능력자들이 득실대는 히어로 영화를 수도 없이 봤지만, 가장 갖고 싶은 능력은 <어바웃 타임>의 이 초능력이다. 이건 단순히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때 왜 그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실수를 하고 1초 뒤에 '아, 이러지 말 걸.'이라고 생각하고 후회하며 자괴감에 빠지는 게 아니라, 곧장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를 아예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이런 게 내가 갖고 싶은 초능력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없기에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실수는 돌이킬 수 없고 한 번 저지른 일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내 삶의 1분 1초가 이렇게나 가치 있게 다가온다는 것을 말이다. 매 순간순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기 때문에 그 순간이 빛을 발하게 되는 거다. 비록 후회 가득한 삶일지라도, 단 한 번 살아가는 삶이기에 나는 생에 충실할 수가 있다. 오타를 절대로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오타를 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한 획을 그어도 정성 들여 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오타도 생기고 글자가 번지기도 하고 맞춤법도 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오타와 번진 잉크와 비문마저도 결국 나를 나답게,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삶의 일부가 된다.


오타를 고칠 수도, 지웠다가 다시 쓸 수도 없기에 이 삶은 무지갯빛으로 빛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오색 빛깔 사이사이에 후회가 들어차 있지만 그래도 전체를 보면 여전히 삶은 무지갯빛이다. 



/

2023년 5월 15일,

침대에 엎드려서 유튜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Willi Heidelbach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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