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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16. 2023

[D-230] 일상에 배경음악 깔기

136번째 글

나는 청각에 예민한 편이다. 절대음감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소리에 민감하다.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고 잠귀도 밝은 등 대체로 소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게는 음악이 아주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적당히 듣고 흘려 넘기는 카페의 배경음악이나 버스, 택시 등에서 틀어 두는 라디오 노래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서 기분이나 상황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이 장면의 분위기에 영향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아주 심각한 장면의 배경에 슬픈 노래를 깔아 놓는다면, 그 장면은 슬프고 처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같은 장면에 신나는 노래를 틀어 둔다면, 영화의 상황 전체가 블랙유머처럼 느껴져서 웃길 수도 있다. 내 일상도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내 기분과 내 행동도 달라지게 된다. 이렇듯 음악은 내 인생을 연출하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끔씩 나는 머릿속으로 배경음악을 삽입한다. 높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서바이버의 Eye of the Tiger를 머릿속으로 재생하는 거다. 빰! 빰빰빰! 하는 노래를 떠올리며 계단을 오르면 그냥 오르는 것보다 덜 힘든 것처럼 느껴진다. 또 급하게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하와이 파이브-O>의 테마곡을 머릿속으로 재생한다. 아니면 <미션 임파서블>의 테마곡을. 이런 긴박한 효과음을 재생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일을 마칠 수 있다. 


이렇게 일상에다가 음악을 집어 넣으면 좋은 점은 나를 상황에 몰입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을 상상하는 것을 통해서 나를 그 상황 속으로 깊숙이 집어 넣고, 결과적으로 그 상황을 극복할 수가 있다. 요즘 들어 이런 '자체적으로 배경음악 깔기'를 더 자주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 집중력이 좀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체력이 부족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기보다는, 내 삶을 제 3자가 보는 것처럼 동떨어져서 쳐다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마 나의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발동해서 그런 것 같다. 바쁘고 피곤한 상황에서 나 자신을 약간 분리해 내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자 하는 거다. 그래서 내 일을 남 일처럼 멀뚱멀뚱 보고 있게 되곤 하는데,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자체적으로 배경음악 깔기'이다. 머릿속으로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 놓으면 멀리서 쳐다보던 내 삶에 다시 빨려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뭔가를 해낼 기운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동떨어진 기분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니까. 영화도 모든 순간에 다 배경음악을 깔아 놓는 건 아니다. 음악이 깔리지 않는 조용한 순간들이 있고, 음악을 삽입해서 몰입감을 높이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것처럼, 내 삶에도 열렬하게 몰입했다가 잠시 관조했다가를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야 덜 피곤하고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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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6일,

버스에 앉아서 덜컹이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ilivan Munguarakaram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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