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May 17. 2023

[D-229] 게임을 안 하고 있다

137번째 글

게임을 안 한지 벌써 5일이 넘었다. 지난 5일간, 단 한 번도 게임을 켜지 않았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의지력을 발휘해서 게임기를 멀리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다. 그냥,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요 며칠간 게임을 안 하게 되었다.


원래 나는 태블릿 PC를 게임기처럼 써 왔을 만큼 게임을 좋아했고 자주 했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을 안 한지는 오래되었고, 컴퓨터 게임이나 콘솔 게임은 원래부터 즐기지 않았지만, 모바일 게임만큼은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해 왔다. 내가 즐기는 게임은 주로 '머지' 류의 퍼즐 게임이다. 같은 아이템 두 개를 합쳐서 레벨업을 하는 형식의 게임 말이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왠지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쌓이는 에너지를 소모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게임에 접속하게 된다. 이 게임을 안 하면 불안하거나 미칠 것 같은 건 아닌데 그냥 습관처럼 게임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친구에게 '나는 게임 중독이 아니라 에너지 소모 아티스트'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습관처럼 해 왔던 게임을 어느 순간부터 안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접속하는 주기가 길어졌다. 원래 아침에 출근하기 전과 퇴근 후에 했었던 게임을 퇴근길 버스 안에서만 하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저녁에 자유 시간이 있어도 굳이 게임을 켜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주기가 길어져서, 오늘로 5일 동안이나 게임을 안 하게 된 것이다. 별로 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신기한 것은 내가 일부러 게임을 멀리하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는 거다. 게임이 재미없어진 것도 아니다. 아마 지금 태블릿을 켜서 게임을 시작하면 아주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안 하고 있을 뿐이다. 별다른 계기도 없고 이유도 없다. 태블릿을 켜서 게임 앱 아이콘이 보여도 굳이 클릭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든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요구하는 게임보다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게임 아이콘 대신에 유튜브 아이콘이나 넷플릭스 아이콘을 클릭한다. 아니면 글쓰기를 위해서 메모장 앱을 켠다. 아니면 비즈 공예를 하기 위해 재료를 가져온다. 지금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게임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아마 이러다가 어느 순간 또 게임이 하고 싶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취미 생활에도 주기가 있는 것 같다. 언제는 게임이 즐겁고, 언제는 영화를 보는 게 즐겁고, 언제는 글쓰기가 즐겁고, 언제는 비즈를 꿰는 게 즐겁다. 그래서 다른 취미에 한참 빠져 있다가도 아무 이유 없이 "오늘은 게임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찾아오게 된다. 이렇게 돌려 가며 여러 취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나는 그냥 게임에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을 뿐이다. 여기에 거창한 의미를 붙일 필요도 없고,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이 글도 지금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놓는 것일 뿐, 게임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거나 게임을 그만둔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 적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그 순간에 나를 가장 즐겁게 만드는 취미를 즐기고 있다. 취미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

2023년 5월 17일,

버스 안에서 내 숨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Rodion Kutsaiev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230] 일상에 배경음악 깔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