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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20. 2023

[D-226] 새싹과 코어 근육

140번째 글

오늘은 기쁜 일이 두 가지나 생겼다. 첫 번째로는, 한 달 반 전쯤에 물에 담가 놓은 아보카도 씨앗에서 드디어 뿌리가 자라났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윗몸일으키기 자세로 상체를 완전히 일으키는 스트레칭 동작에 진전이 있었다.


아보카도 이야기부터 해 보면, 나는 정말로 이 아보카도가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약간은 포기하고 있었다. 이 씨앗을 물에 담갔던 것이 벌써 한 달하고도 2주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싹이 나려면 한 달은 걸릴 것이라기에 참을성이 필요하겠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한 달간은 나름대로 지극정성으로 아보카도 씨앗을 돌보았다. 물도 갈아 주고, 오다가다 하며 들여다보고, 씨앗이 얼마나 갈라졌는지 아침저녁으로 확인해 보면서.


하지만 한 달이 지났는데도 갈라진 틈만 약간 생겼을 뿐, 뿌리도 싹도 나지 않자 실망하는 마음이 커졌다. 원래 내가 식물 키우기에 소질이 없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나는 이 아보카도는 싹이 나기는 틀렸다고 단정 지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아보카도 키우기에 조금 소홀해지게 되었다. 물은 주기적으로 갈아 주었지만 그다지 신경 써서 들여다보지도 않게 된 거다. 그리고 2주 뒤인 오늘, 마법처럼 아보카도 씨앗에 뿌리가 돋아난 거다. 놀라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느새 씨앗에 생긴 틈새가 넓게 벌어져 있었다. 그 틈새로 뿌리가 자라났다. 그리고 아마 조만간 위쪽으로 싹도 자라날 것이다. 내가 기대를 버리고 있던 그 2주 동안, 아보카도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다. 뿌리를 보자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아보카도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너무 일찍 포기했던 내가 약간 부끄럽기도 했고.


윗몸일으키기 동작도 내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나는 저번달부터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은 가벼운 스트레칭과 함께 시작하는데, 근육 곳곳을 풀어주고 나면 마지막으로 윗몸일으키기 동작을 하며 상체를 최대한 일으켜 보는 루틴이 뒤따른다. 복근 힘으로만 상체를 지탱하며 완전히 몸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첫날에 나는 이 동작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고작 목과 가슴 정도까지만 겨우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그 뒤로도 비슷했다. 아무리 용을 써봐도 도저히 등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등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처음으로 가슴을 넘어서 윗배까지 들어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운동을 시작하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필라테스를 한다고 해서 자세가 갑자기 좋아지거나 운동선수 같은 몸을 갖게 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건강을 되찾을 거라는 기대도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하고 있지는 않았다. 변화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에서 더 나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하자고, 그렇게 마음먹었었다. 필라테스가 너무나도 고되고 내 몸이 너무나도 무겁고 굳어 있는 것이 느껴져서 더 기대를 버렸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지난 한 달간 다시 헬스장을 찾아 열심히 운동을 한 것이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들어 올릴 수 없었던 상체가 오늘은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들어 올려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어 근육이 조금씩 잡히고 있었던 거였다. 그 동작을 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미 땀범벅에 녹초가 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박수를 치고 탄성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뻤다.


내가 만약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지 않았거나 한 달간 해봤는데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어제 필라테스를 그만두었다면 이 결실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보카도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약 한 달이나 기다렸는데도 싹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보카도를 버렸거나 물을 주지 않았다면 아보카도는 아마 진짜로 죽었을 것이다. 오늘 내가 느낀 이 기쁨을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씨앗도, 내심 포기하고 있었던 씨앗도, 꾸준히 물을 갈아 주고 돌보다 보면 어느 순간 마법처럼 싹이 자라난다. 근육이 생기거나 운동 능력이 향상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내 몸도, 열심히 운동을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새싹이 돋아나고 코어 근육이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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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0일,

식탁에 앉아서 아보카도 씨앗을 바라보.



*커버: Image by Jeremy Bishop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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