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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19. 2023

[D-227] 선한 것들의 이야기

139번째 글

예전에는 어둡고 냉소적인 이야기를 좋아했었다. 그게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을 비웃으며 야유를 보내고, 인간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전시하며, 추악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롱하고, 비꼬고,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진짜'라고 생각했었다. 사랑이나 화해, 용서, 믿음과 같은 가치들은 지나치게 순진한 말이라고 여겼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비참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을, 인간을 경멸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작품들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좋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좋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선한 가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다. 사랑, 화해, 용서, 믿음, 이해, 희망 같은 단어들이 좋다. 그런 이야기들이 내게 감동을 준다. 비참의 끝까지 떨어지더라도 선함을 믿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를 가장 깊이 감동시킨다.


최근 들어 영화관에서 이런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웨이먼드는 늘 친절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건, 우리는 친절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발, 친절을 베푸세요.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는요."라고. 모든 곳에서 모든 것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데도 에블린은 사랑하는 조이와 함께 있기를 선택한다. 이 작품은 영화 전체가 사랑에 보내는 거대한 찬사였고, 냉소와 무기력에 빠진 이들에게 내미는 손이었다. <장화 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도 삶과 죽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그 삶에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도 마찬가지다. 삶은 끔찍할 수 있고 사람은 잔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낙오되고 상처받고 부서진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여서 가족을 이룰 수 있다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살다 보니 선하게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냉소하고, 비웃고, 야유하고, 조롱하고, 비꼬고, 절망하는 것은 차라리 쉬웠다. 하지만 착한 행동을 하는 것, 희망을 갖는 것, 믿음을 잃지 않는 것, 긍정적으로 사는 것, 사랑하는 것,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 서로를 이해하는 것, 친절을 베푸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선한 것들의 이야기가 좋다. 그렇게 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에. 살면서 끊임없이 좌절하고 벽에 부딪히고 괴로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희망을 갖고 괜찮아지리라고 믿고 싸우며 단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만으로 어둠 속에 한 걸음을 더 내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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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9일,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웅웅거리는 소음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Artak Petrosya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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