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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06. 2023

[D-360] 먼지 쌓인 모니터를 닦다

여섯 번째 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큰 물리적 변화가 생겼다.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무시무시해 보이는데 사실 별일은 아니고 그냥 내 자리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회사에서 내 위치 좌표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 새해가 되면서 근무 타입을 조정했는데, 계속 재택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오피스 출근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올해부터 근무 타입을 바꿔서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좌석 배치를 새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대대적으로 우리 팀 전체가 이사를 했다.


고작 자리 하나 옮기는 건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모니터도 옮기고, 온갖 선들을 다 뽑았다가 다시 꽂아 넣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달력이며 텀블러 같은 것들도 정리하고, 이왕 정리하는 김에 서랍에 아무렇게나 넣어뒀던 것들도 꺼내서 정리하고….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무래도 모니터를 옮기는 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니터는 일단 크고 무겁다. 그리고 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


나는 내 모니터가 그렇게 먼지투성이인지를 오늘 처음 알았다.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하루에 8시간씩 매일같이 뚫어져라 쳐다보는데도 먼지가 그렇게 쌓여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몰랐다니. 모니터를 닦으면서 나는 내가 왜 모니터에 먼지가 쌓이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지를 혼자 생각했다.


어쩌면 모니터가 늘 켜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화면을 켜 놓으면 모니터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띄워진 내용만 보게 되니까. 또 화면이 밝게 켜져 있으면 먼지나 손자국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건 전원이 꺼져서 빛을 잃고 까맣게 되어야만 잘 보이는데, 일할 때는 늘 모니터를 켜 놓으니 매일 몇 시간씩 쳐다보아도 알아채지 못한 거다. 꺼진 모니터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출퇴근할 때뿐이다. 그런데 이 때는 내가 모니터에 별로 관심이 없다. 출근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전원 버튼을 눌러서 화면을 켜고, 퇴근할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에 가느라 꺼진 모니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오늘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올해가 다 지날 때까지도 먼지가 쌓인 걸 몰랐을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평소에 내 마음을 신경쓰지 않으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마음에 가득 먼지가 내려앉아도 아예 자각조차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에 먼지가 새까맣게 쌓인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그리고 후회한다. 나는 왜 내 마음을 돌보지 않았나, 이렇게 두터운 먼지 층이 회색빛으로 딱딱하게 굳어 갈 동안 나는 대체 무엇을 했나, 하고.


두 가지를 배웠다. 우리 주변에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놓여 있는 것일수록 더 신경을 써서 관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는 주기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내가 모니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다면 먼지가 쌓이기 전에 닦아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과 내 기분에 초점을 맞춰서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만 마음에 얼룩이 지기 전에 닦아 줄 수 있고, 상처가 난 곳을 꿰메고 때워 줄 수 있고, 굳어지지 않게 주물러 줄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할 때도 그렇고. 또 가끔씩은 내가 만들어 놓은 일상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 보아야 한다. 새로운 위치에 서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각도로 시선을 돌려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리를 옮길 때가 되어서야 모니터에 쌓인 먼지를 눈치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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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6일,

퇴근 후 오피스의 새로운 내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가 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Kevin Phillip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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