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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31. 2023

[D-215] 요리의 즐거움

151번째 글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요리를 했다.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집에서 이것저것 해 먹는 편인데, 일이 바빠지면서 꽤 오랫동안 요리다운 요리를 하지 못했었다. 그동안은 대충 끼니를 때우기 위해 간단히 뭘 만들어 먹거나 이미 조리된 음식을 데우는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휴가를 내서 하루종일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밥을 챙겨 먹기 위한 요리가 아닌,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한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의 메뉴는 연어구이를 곁들인 오일파스타. 재료도 별로 필요 없고 설거지도 별로 안 나오고 시간도 별로 안 걸리는,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다. 연어 토막은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양파와 함께 에어프라이어로 굽고 파스타는 삶은 뒤 프라이팬에서 버터, 마늘, 올리브유,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를 넣고 살짝 볶아 주기만 하면 된다. 연어를 굽는 동안 파스타를 만들면 되니까 재료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20분도 안 걸린다. 하지만 맛은 끝내주게 좋다.


요리의 좋은 점은 아주 즉각적으로 결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눈에 보인다. 토마토를 씻으면 토마토가 깨끗한 토마토를 얻게 된다. 마늘을 다지면 다진 마늘을 얻게 된다. 파스타를 삶으면 익은 파스타 면을 얻게 된다. 재료들을 넣어서 볶으면 완성된 파스타를 얻게 된다. 연어를 구우면 연어구이를 얻게 된다. 이 모든 걸 접시에 옮겨 담으면 맛있는 요리 한 접시를 얻게 된다. 아주 단순하다. 내가 뭔가를 하면 그걸 바로 획득할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요리를 하는 것은 성취감을 준다. 게다가 최종 결과물로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또 요리를 하는 동안 주방에 퍼지는 맛있는 냄새도 기분을 좋아지게 만든다.


또 요리를 하는 과정은 내 손으로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노력한 딱 그만큼 결과가 나오는 기분, 이런 통제된 상황에 놓인 기분은 성취감을 더욱 높여 준다. 심지어는 약간의 해방감까지 주곤 한다. 요리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버터를 프라이팬에 올리면 버터는 녹는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나 버터는 녹을 것이다. 내가 신경 써서 소금을 치면 적당히 간이 맞는 요리가 완성될 것이다. 내가 불 조절을 잘못하면 요리가 다 타 버릴 것이다. 긍정적인 결과던, 부정적인 결과던, 요리의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그래서 여러모로 요리는 내게 힐링 그 자체이다. 확실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이 예측 불가능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경험은 더욱 소중하다. 내가 1분 뒤에도 살아 있을지, 내일은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런 일들은 아무리 추측해 보려고 해도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요리를 할 때만큼은 내가 이 칼로 양파를 누르면 썰릴 것이고 에어프라이어에 양파 조각을 넣고 돌리면 구워질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은 거의 대부분 들어맞는다. 그래서 나는 요리가 좋다. 비록 많이 하지는 못하고 잘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도 적지만, 요리를 할 때만큼은 기분이 좋다. 요리가 끝나고 직접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기분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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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1일,

소파에 앉아서 스포츠 중계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Webvill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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