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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04. 2023

[D-211] 충격받는다는 말

155번째 글

'충격을 받았다'라는 말 앞에 때때로 붙는 표현이 있다. '좋은 뜻으로' '좋은 의미로' 같은 표현들이다. 또는 반대로 '나쁜 뜻으로' '나쁜 의미로' 같은 표현들. 이렇게 좋고 나쁨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것은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둘 다 표현할 수 있는 뜻이다. "그 노래 듣고 정말 충격을 받았어. 좋은 의미로 말이야.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노래였어!"처럼 칭찬으로 쓸 수도 있고, "그 영화 방금 보고 나왔는데 너무 충격받았어. 너무 재미없어서 나쁜 의미로 충격적이었어."처럼 반대 의미로 쓸 수도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충격'이란 '사람의 마음에 심한 자극으로 흥분을 일으키는 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심한 자극으로 흥분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양쪽을 모두 나타낼 수 있었던 거다. 이렇게 좋은 뜻과 나쁜 뜻으로 모두 쓸 수 있는 말들이 있다. '놀랍다' '자극' '흥분' '예상치 못한'처럼 보통 놀란 기분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들이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보통 이 말들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충격을 받았다는 말도, 놀랐다는 말도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는 느낌이다. 아마 우리는 언제나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충격을 받는 상황이나 놀라게 되는 상황은 보통 생존에 불리한 경우가 많았고, 예상치 못한 위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뉘앙스로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충격, 놀라움 같은 표현들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 좋은 의미로도 사용할 뿐, 단어 자체는 부정적인 분위기를 더 많이 풍긴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충격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놀라는 감정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만약 충격과 놀라움 자체가 정말로 나쁘기만 한 의미였다면 그 앞에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 같은 말들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충격을 받았거나 놀랐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이 내게 충격과 놀라움을 주었느냐이다. 그 대상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충격과 놀라움의 대상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이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 거다.


오늘도 나는 긴장해서 잠든 탓인지 화들짝 놀라며 아침에 잠에서 깼고, 뉴스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놀라며 깬 이유는 마음이 불안했기 때문이고 뉴스를 보며 충격을 받은 것은 여러 사건사고 소식 때문이다. '불안'과 '사건사고'라는 부정적 대상들이 내게 충격을 주고 놀라게 했다. 또 나는 어제 연극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유튜브에서 무용 영상을 보며 놀랐다. 어제 본 연극이 정말 참신하고 대범해서 충격적이었고 댄서들의 몸놀림이 대단해서 놀라웠다. 연극과 무용이라는 대상들이 내게 긍정적인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준 것이다. 이렇게만 봐도 내가 느낀 충격과 놀라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나쁜 건 전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느낀 감정을 평가하기보다는 내게 충격을 주고 놀라움을 준 대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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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4일,

책상 의자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Seyedeh Hamideh Kazemi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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