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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06. 2023

[D-209] 더는 애쓰지 않기로 했다

157번째 글

어제 운동치료 상담을 받고 왔다. 어떤 운동을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얼마나 자주 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본격적으로 건강 관리를 좀 해 보려고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검사를 했고, 어제는 그 결과를 알려 주고 운동 플랜을 계획하는 상담일이었다.


상담을 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50분 정도 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주 2회, 40분 정도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량을 조금 늘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 걱정이 가득 차올랐다. 최근에 너무 바빠서 새벽에 일하고, 야근을 하고, 하루 종일 일하느라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밥 먹을 시간도 아껴 가면서, 출퇴근 시간 버스에 앉아서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매일 50분을 운동을 위해 시간을 빼야 한다는 것이 너무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 말을 선생님께 했다. 그렇게 자주, 그렇게 많이 운동을 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그 말을 하는 기분이 비참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건강해지겠다고 이 프로그램을 신청해 놓고는, 일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게 창피했다. 새벽과 낮과 저녁과 밤에 내내 일을 하느라 운동을 매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기분이 서러웠다. 운동을 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다는 게.


상담에서 돌아오고 나서 이제 하루 종일 일을 하는 생활은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내가 내 시간들을 다 쏟아 가면서 일을 했던 이유는 일을 마쳐야 하는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나 하나만 고생해서' 일정을 맞춰 놓으면, 그래서 다음 담당자에게 빨리 일을 넘겨 놓으면, 그러면 정해진 일정 내에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일정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일이 늦어지면 늦어지는 거다. 며칠 더 늦게 끝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계획한 일정대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그냥 하루이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을 하고 일정을 조정하면 된다. 어차피 모두가 촉박한 일정에 쫓기고 있고, 기한은 그냥 계획으로 정해 놓은 것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나 하나가 야근을 안 한다고 해서 안 돌아가는 회사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해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팀이라면 이 팀에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내가 지금 혼자서 아등바등 일을 해서 겨우 일정을 맞춘다면 이 문제를 가리기만 할 뿐이다. 빨리 발견해서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그걸 내 개인적인 고통으로 덮어 놓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그래서 더는 이렇게 애쓰지 않기로 했다. 더는 이러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의 목표는 이 일을 일정에 맞게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내가 이 인생에서 원하는 목표가 아니다. 내 목표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건강해지고 싶다.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다. 그리고 이 소망을 위해서,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더 이상은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나 자신을 갈아 넣어서 일에 몰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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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6일,

식탁에 앉아서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Andrew Shelley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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