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Jun 16. 2023

[D-199] 미워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167번째 글

오늘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났다. 지난 사흘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다. 워낙 많은 친척 분들과 지인 분들이 다녀가셔서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바빴던 탓일까, 할머니의 죽음을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는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장례 미사에서 처음으로 약간 현실감이 들었다. 정말로 할머니가 떠나셨다는 느낌을 사흘이 지나서야 처음 받았다.


내가 할머니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사실 좀 복잡하다. 할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셨고, 멋진 분이셨고, 존경할 만한 분이셨고, 여러모로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분이셨고, 손주들을 아끼고 사랑하시고 언제나 손주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셨던 분이셨다. 나도 할머니께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만큼 할머니를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할머니를 미워하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할머니로부터 상처받은 적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늘 솔직하고 직설적이시고 말에 뼈가 있으셨던 할머니의 화법이 내 마음에 날카로운 살로 박혔던 적이 좀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할머니를 원망하기도 했고, 할머니를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워하는 일은 얼마나 부질없는지. 그동안 내가 혼자 마음속으로 할머니를 미워하면서 나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장례식 둘째 날 오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잠깐 쉬려고 빈소에서 나와 방에 들어가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할머니가 이제 돌아가시고 안 계셔서 부질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미워하는 행위의 본질 때문에 부질없다고 느껴진 거였다.


미움은 때때로 성장의 토대가 되고 변화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더 큰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미워하는 일은 상처 부위를 긁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상처 부위를 긁으면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지거나 겨우 멎었던 피가 다시 나거나 딱지가 뜯어지며 흉이 더 크게 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상처받은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고 만지고 곱씹으면 더 많이, 더 오래 아파하게 된다. 굳이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까지 내 고통을 확장시키게 된다. 미움은 상처를 더디게 낫게 하고 더 크게 흉지게 만든다. 한 개인을 향해서 너무 오래 지속되는 미움은 내가 나에게 스스로 가하는 2차 가해인 것이다.


그래서 용서가 필요하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용서는 아주 자기중심적인 행위이다. 용서란,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내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나를 상처 입힌 그 말과 행동이 더는 내게 추가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용서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에 이미 할머니를 용서했다. 그러면서 홀가분해졌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좋은 기억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기억들은 많이 남기고, 상처는 굳이 꺼내 보지 않은 채 씻어내고 치료하고 흘려보내 버렸다. 할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오늘 아침 장례 미사에서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도 결이 비슷했다. 나는 집안이 천주교 집안일 뿐 독실한 신자가 전혀 아니고 성당도 나가지 않지만 이 미사에서 들은 한 문장이 이런 맥락에서 기억에 남았다. "고인께서 인간으로서 누구나 갖는 나약함으로 인해 여기 계신 분들께 죄를 지은 적이 있다면, 너그러이 그를 용서하시어, 그의 영혼과 여러분의 영혼을 모두 평화롭게 하십시오."



/
2023년 6월 16일,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서 올해 처음 트는 에어컨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aul Csogi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200] 부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