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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05. 2023

[D-180] 만족하는 기쁨, 만족시키는 기쁨

186번째 글

나는 누군가로부터 대가 없는 친절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낯설다. 누군가 나를 위해 친절이나 도움이나 배려를 베풀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약간은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이 함께 올라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첫 문장을 다시 써야겠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친절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대가가 있건 없건, 누군가 날 도와주는 것이 낯설다. 심지어 내게 도움을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에게조차도 말이다. 나를 위해 문을 열어 주는 경비원의 친절한 손짓도, 음식을 주문받는 식당 종업원의 친절한 응대도, 카운터 직원의 친절한 안내도 모두 감사하고 기쁘지만 동시에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조금 어색하다.


내가 이렇게 내게 쏟아지는 친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를 추측해 보면, 아마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다른 사람의 정성과 친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의 가치에 비해서 너무 과분한 것들을 받고 있다고.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고, 그래서 부담스럽고, 그래서 낯설고 어색하다. 자존감이 낮다 보니 누군가의 친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나 받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나는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나는 만족하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만족시키기를 좋아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넓은 아량이나,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이타적인 마음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유에서였다. 나는 나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 중 하나로 대가 없이 베푸는 친절을 택했던 거였다. 예전에는 그런 줄 몰랐는데, 이제는 그게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자 했던 무의식적인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을 안다. 한때는 부정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의도로 친절했었다는 것을 이렇게 글로 적어서 공개할 정도로 나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고 나의 그런 면모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다. 내게 베풀어지는 호의에 감사함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지나친 친절을 제공하려는 습관도 조금씩 고쳐 나가고 있다. 내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거절해야 할 것 같으면 거절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정말로 순수하고 이타적인 이유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친절을 베풀며 거기서 기쁨을 얻는 법도 깨달아 나가고 있다.


앞으로는 아마 조금 더 익숙해지고 조금 더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가 내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면서, 또 때로는 내가 다른 사람을 만족시켰다는 것에 기뻐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친절에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 만족하는 기쁨과 만족시키는 기쁨을 모두 느끼면서 말이다.



/
2023년 7월 5일,
책상에 앉아서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adison Ore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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