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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06. 2023

[D-179] 마음의 벽으로부터 탈출하는 법

187번째 글

나는 나 자신을 이미지화해서 상상할 때, 외딴집이나 높은 성벽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일부러 이런 이미지를 상상하거나 내 성격을 투영해서 상상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바람이 부는 황무지나 바닷가에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낡은 집, 아니면 튼튼하게 쌓아 올린 높은 성벽과 꽉 닫힌 성문 같은 이미지. 이 이미지를 굳이 해석해 보자면 나의 방어적인 태도나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내면,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성격, 발산하기보다는 속으로 파고드는 기질 등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굳이 그런 의미 부여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이런 외딴집이나 성벽이 '상징'하는 것을 마음에 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나 자신을 상처받는 일이나 버림받는 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외따로 떨어트려 놓았고, 성벽을 높이 쌓아 놓았다. 이 고독과 전략적 방어는 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 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 외로운 집과 이 튼튼한 성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 집과 이 성에서 언젠가는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그것도 내가 스스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그래야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탈출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아예 성벽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 보기도 했다. 내 상처와 내 과거와 내 감정들은 잊어버리려 했었고, 벽을 세우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해 보려고 했었다. 모든 건 다 집 안에, 성벽 안에 남겨 두고 문을 닫고 나가버리려고 시도했었다. 이런 시도는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늘 탈출이 아닌 짧은 외출로 끝나곤 했다. 나는 내 발로 걸어 나갔다가도 언제나 다시 이 집 안으로, 이 성벽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안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시도는 결국 나를 다시 이 외딴집과 높은 성벽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이번엔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나는 집 안에서 지하실로 내려갔고, 성벽 아래를 파 보았다. 잊으려고 했던 나의 감정들이나 단절해 버리려고 했던 내 부끄러운 모습과 내 과거들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매일 글쓰기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었다. 나는 밖을 바라보는 대신 내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결과,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는 법이나 나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그 무게를 줄이는 법이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이 방법을 통해서 나는 언젠가는 이 집 밖으로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이 성벽을 그저 폐허로 남겨 두고 떠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과 이 성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일이 더 필요했다.


리나 사와야마의 노래 'Hold the Girl'의 뮤직 비디오(영상 링크)를 보았을 때, 나는 그 뮤직 비디오의 내용이 내가 상상하던 이런 이미지나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비유와 너무나도 비슷해서 놀랐다. 이 뮤직 비디오에서 리나는 외딴집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애쓰지만 어느 정도 이상으로 멀어지면 늘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다시 집 안으로 끌려 돌아온다. 리나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지하실을 들여다본 이후이다. 노래 가사처럼, '내 안으로 들어가서 '너(나 자신)'를 가까이 붙잡은' 이후에.


Reach inside and hold you close
I won't leave you on your own
Teach me the words I used to know
Yeah, I forgot 'em Iong ago

내 안으로 들어가서 너를 가까이 붙잡았어.
나는 너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내가 알고 있던 그 말들을 내게 가르쳐 줘.
그래, 나는 그 말들을 오래전에 잊어버렸었어.

- 리나 사와야마, 'Hold the Girl' 중에서.


내가 스스로 마음에 쌓아 놓은 벽을 넘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벽의 존재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내가 벽돌을 쌓아 올렸을 때 느낀 감정들, 그걸 쌓고 있었던 나 자신의 못난 모습, 내가 그 벽을 쌓기로 결정했었던 이유, 이런 것들을 부정하고 없애 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나를 이곳에 잡아두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파헤쳐 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 그래야만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무작정 나가려고만 하면 어느샌가 다시 벽 안쪽으로 돌아와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벽을 넘는 법은, 결국 나 자신과의 화해와 인정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 같다. 과거의 나와 화해하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미래의 나를 사랑하는 일을 통해서.



/
2023년 7월 6일,
카페에 앉아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tepan Una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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