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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13. 2023

[D-141] 싱거운 삶에 간을 하기

225번째 글

삶에도 싱겁고 짠 정도가 있다면, 내 삶은 어느 정도로 싱거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짭짤한 삶을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얼마나 매콤 달콤 새콤할 삶을 살고 있는지도.


이런 삶의 염도는 무슨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삶에 간을 해주는 것은 내가 즐기는 취미와 관심사, 예술작품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영화, 내가 보는 연극, 내가 보는 그림, 내가 듣는 음악 등이 내 삶을 싱겁지 않고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고 말이다. 영화관에 앉아서 영화를 볼 때면 그 영화가 재미있건 아니건 간에 삶이 조금 더 충만해지는 느낌이 든다. 공연장에 가서 공연이 시작하기 전 암전된 무대를 보며 앉아 있으면 삶이 조금 더 즐거워지고 마치 향신료를 뿌린 것처럼 맛이 다채로워진다. 책 속 이야기에 푹 빠져들거나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살아간다면 맹숭맹숭하기만 한 삶에 소금을 치고 후추를 치고 고춧가루를 뿌려 주는 게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내 취미에 열정을 쏟았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건 물론이다.


그런데 음식은 싱겁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하던데, 삶도 싱겁게 먹어야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작품이 주는 것이든 다른 경험들이 주는 것이든, 너무 자극적이고 풍부한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는 건 아닐지. 그래서 정작 집중해야 하는 것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두리번거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이게 맞다면, 싱겁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면, 내 삶이 지금에 비해서 어느 정도로 싱거워야 하는 건지 알고 싶다. 누군가 정확한 수치로 내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소금을 1.33g 더 넣고 고추 반 개를 썰어 넣고 마늘 두 쪽을 다져 넣으라는 식으로, 누군가 적절한 레시피를 내게 공유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민하지 않고 따라서 할 수 있도록.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람마다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의 양이 다르고 사람마다 입맛에 맞는 간이 다르듯이, 삶이 싱거운 정도도 사람마다 제각각일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딱 떨어지는 수치와 범용적인 레시피는 공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게는 싱겁게 느껴지는 삶이 다른 사람에게는 짜디짜게 느껴질 수도 있고, 내가 너무 짜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생각한 삶이 다른 사람에게는 간이 딱 맞다고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고수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하듯이, 누군가는 고추가 많이 들어간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하듯이, 각자 선호하는 삶의 양념들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적당한' 간이라는 것은 없다. 내 삶이 싱거운지 아닌지는 오직 나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내 삶에 어떤 향신료를 얼마나 추가해야 할지, 물을 더 넣을지 말지는 오로지 내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집에서 드라마 한 편을 보았고, 다음 달에 볼 연극을 예매했고, 좋아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고 청소를 했다. 내일모레는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다. 내 삶에 풍미를 더해주는 이 취미와 예술들을 한껏 즐기기 위해서다. 내가 느끼기에 이 정도는 적당한 간인 것 같다. 이렇게 적당히 삶에 간을 하고 양념을 치면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열렬히 사랑하면서, 그렇게 맛있게 살아가 보려 한다.



/

2023년 8월 13일,

소파에 앉아서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arion Botell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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