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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28. 2023

[D-126] 생일은 무엇을 축하하는 날일까

240번째 글

오늘은 내 생일이다. 아침부터 가족들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 심지어는 예전에 다니던 치과나 가입한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에게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불현듯, 이게 왜 축하받을 일인지가 의아해졌다. 우리는 생일을 왜 축하하는 걸까? 대체 무엇을 축하하는 날이길래 생일은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중요한 날로 기념하는 것일까?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지만, 정작 태어나는 것 자체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태어나기로 선택하지도 않았고 태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았고 태어나기 위해 투쟁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존재했다.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기의 형태로 그저 엄마의 뱃속에 존재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오늘은 딱히 축하받을 만한 것이 없다. 나를 오늘 태어나게 한 것은 엄마와 아빠이므로 오히려 그분들이 축하를 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특히 엄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고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리고 엄마에게 케이크를 사다 드리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생일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일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얻은 ‘존재’와 ‘삶’이라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기념하는 거라고. 생일은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대가도 없이 그저 나 자신의 존재를 축하하는 날이고, 살아서 보내온 시간이 얼마나 좋았든 나빴든 상관없이 내가 ‘삶’이라는 것을 살고 있다는 것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생일은 내가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축하를 받고 기념할 만한 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한 날이 되고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일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딱 하루밖에는 갖지 못한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일 년에 단 하루씩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두 번 생일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해서 생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결혼처럼 안 하거나 여러 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크리스마스나 부처님 오신 날처럼 종교에 따라 다르게 기념하는 것도 아니다. 졸업 기념일이나 입사 기념일처럼 누군가에겐 있고 누군가에겐 없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생일은 평등하다. 기일도 마찬가지다. 존재는 평등하다. 삶과 죽음은 평등하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똑같이 받기만 한 것들이기 때문에 평등하다.


생일은 내가 살아 있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기억하는 날이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살아 있고 존재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가 나에게 도움을 주어서 고마워.’ ‘네가 나에게 해준 일들이 고마워.’가 아니라 ‘내 곁에 너로 존재해 주어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생일 축하해”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자 오늘 내가 들은 모든 축하들이 더욱 감사해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 자신에게도 한 번 속삭여 본다. “생일 축하해.”



/

2023년 8월 28일,

식탁에 앉아서 떠들썩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Isabella Fisch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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