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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29. 2023

[D-125] 선택하지 않고도 얻는 지식

241번째 글

어떤 것들은 내가 노력하지 않았고 선택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는데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집안 환경이나 어린 시절의 경험 같은 것. 나는 예전에는 내가 노력하고 선택하고 원해서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은 지식이라고 생각했었다. 지식은 자연스레 습득되기보다는 내가 원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지식도 마찬가지로 일부는 내가 노력하지 않았고 선택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는데도 얻을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알고 있는 종교 관련된 지식들이 그렇다. 나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성당을 꼬박꼬박 다녔고, 성경 공부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톨릭 관련 지식들을 얻게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는 성당에 거의 가지 않게 되었고 딱히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이제 종교는 문화적, 학문적으로만 바라보게 되었지만, 아직도 성경 관련 레퍼런스들을 일상 속에서 쉽게 발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 "목이 마르다."라고 말하면 나는 자동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떠올린다. 이때 예수가 목마르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를 때면 나는 머리카락을 잃고 힘을 잃은 삼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성경 관련 레퍼런스가 나오는 영화들을 볼 때도 어떤 은유가 들어 있는지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거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습득한 이 지식들 때문에.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는 이런 식으로 얻는 지식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적었으니까. 내가 어떤 책을 읽을지, 어디에 갈지, 무엇을 볼지는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나 선생님에 의해 결정되곤 했었다. 나는 부모님이 사서 책장에 꽂아 주신 책을 읽었고,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필독도서를 읽었고, 가족들이 가는 곳에 따라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스스로 관심사를 찾아 나섰고 나만의 취미도 생겼다. 내가 원하는 책을 내가 사서 보았고, 내가 관심 있는 정보를 내가 찾아보았다. 아마 앞으로는 이렇게 내가 원해서 얻는 지식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건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얻기 힘들 거라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 내게 떠먹여 주는 것들이 적어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새롭게 배우고 익히지 못하고 계속 옛날에 알게 된 지식들로만 되새김질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2023년 8월 29일,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dam Wilso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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