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Sep 13. 2023

[D-110]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256번째 글

나는 비 오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감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으레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기 마련이라던데, 나는 비까지 좋아할 만큼 충분히 감성적이지 못한가 보다. 아니면 나는 때로는 감성적이고 때로는 현실적인 사람인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감상에 젖어 있기보다는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과 질퍽해진 바닥과 젖어버리는 신발을 먼저 떠올리는 것일 수도. 아니면 정말 그냥 취향 문제일 수도 있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비를 좋아한다는 전제 자체가 편견이라, 감성적인 사람들 중 일부는 비를 싫어하고 일부는 비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적어도 나는 비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좋아해 보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아직 그 노력이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음악 덕분이다. 비 오는 날 자체는 별로지만, 여기에 음악에 더해지면 나름대로 견딜 만해지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에 듣는 음악은 또 그것만의 매력이 있다. 무거워지는 공기, 진득한 습도, 축축한 방 안, 더해지는 피로, 제멋대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같은 비 오는 날의 단점들은 음악과 함께한다면 어느 정도 상쇄된다. 창 밖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또는 우산을 쓰고 걸을 때 이어폰을 끼고, 그 날씨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 본다면 말이다. 'Singing in the Rain'이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나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이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노래들을. 이 노래들이 귓가에 울려 퍼지면 내 세상은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는' 것이 된다. 그건 견딜 만하다. 아니, 오히려 좋다.


예전에 1+1=3이라는 개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두 가지가 더해지면 시너지를 내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가 추가되어서 1+1=2가 아니라 3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 개념에 상당히 공감하는 편이었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각자 1씩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해낼 수가 있고, 빵에 버터가 더해지면 두 가지를 각각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듣는 음악이 좋다는 것은 내게 1+1=3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새로운 개념을 제공해 주었다. 바로 1+(-1)=3이라는 것이다. 좋은 것 두 가지를 합치면 더 좋은 게 당연하지만, 좋은 것과 좋지 못한 것을 합쳐도 그 두 가지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좋아하는 것 한 가지에 별로 안 좋아하는 것 한 가지가 더해진다고 그 두 가지가 상쇄되어 0의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3만큼의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비 오는 날(-1)에 음악(+1)을 더하면 나름대로 즐거운 하루(3)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오늘은 비가 온다. 저녁때까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피곤하고 눅눅한 공기가 답답했다. 하지만 내게는 음악이 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괜찮아질 예정이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는' 하루로 괜찮게 보낼 예정이다.



/

2023년 9월 13일,

버스에 앉아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Joy Stamp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111] 빼앗고 또 빼앗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