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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5. 2023

[D-98]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

268번째 글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속으로 삼키며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나는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받아들여지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직 이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 이 질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왜 나를 사랑하나요?"이다. 얼핏 보면 이 두 질문은 서로 반대되는 내용인 것처럼 보인다. 전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묻고 있고 후자는 나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두 가지는 결국 함께 가는 질문일 수밖에 없다.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라고 묻는 사람은 '내가 이렇게나 멋지고 훌륭하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인데 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고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이런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태도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은 울음을 삼키면서 하는 것이다. 스스로 사랑받기에 충분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겠냐고 되묻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보기와는 달리 나를 사랑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하니 사랑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삼키며 살아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만 할 뿐, 다른 사람에게 꺼내어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없고, 사랑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함께 품고 있으므로. 그래서 이 질문은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탄식에 가깝다. 사랑을 받고 싶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자신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한탄이자 토로이다. 영원히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 거라는 슬픔 어린 독백이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만 하고 있다는 점이 이 질문의 가장 안타까운 점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나에게만 하고 있다는 점은 또 약간의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질문을 듣는 게 나뿐만이라면, 결국 '나는 왜 나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되는 까닭이다. 그 질문 속에 답이 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나로 충만해 있지 않는데 그 누가 나의 빛을 알아봐 줄 수 있을까.


그러니까 결국 사랑받고 싶은 이 욕망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조금씩 사랑해 가기 시작하면, 나를 조금씩 인정해 주고, 나를 조금씩 받아들여주기 시작하면,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사랑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결국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그 상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괜찮은 바로 그 상태 말이다. 나를 사랑함으로써 언젠가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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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5일,

버스에 앉아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Geert Pieters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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