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46]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

20번째 글

by 슬로

나는 아주 방어적인 사람이다. 나는 내 주변에 선을 확실히 그어 놓는다. 나는 그 선을 따라서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둔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창문도 아주 작게만 내 둔다. 그리고 문은 아주 가끔씩만 열어 준다. 누군가를 들여보내는 일도, 내가 스스로 성벽을 넘어 나가는 일도 거의 없다.


내가 이렇게 방어적인 이유는 내가 겁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미움받는 것이 두렵다. 욕을 먹는 것이 두렵고,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 섣불리 나를 드러내 보였다가 실수하고 후회하게 될까 봐, 또 상대방이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난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나는 아직도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어린아이의 어리광 같은 마음이 아직 내게는 남아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때도 내 이런 방어적인 태도는 그대로 나타난다. 나는 내 개인정보를 브런치라는 열린 공간에 털어놓는 것도 겁이 났다. 그래서 에세이에 '출근길'이나 '업무' 같은 단어를 쓰는 것도 처음엔 주저했었다. 내가 직장인이라는 것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는 데에서 추측할 수 있는 내 나이나 사회적 관계들도 드러내기 꺼려졌다. 내가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브런치에 쓴 에세이(글 보러 가기)에서 '엄마, 아빠, 언니'라고 내 가족을 하나씩 나열했었는데, 이걸 쓰기까지, 또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이 글을 발행하면 내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 내 가족 구성원은 이렇다는 것,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모두 알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이런 정보들을 인터넷 공간에 오픈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글 너머로 나를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표현들을 그대로 썼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여성이고, 언니가 한 명 있는 4인 가족이고, 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고, 직장을 다니고 있고, 버스로 출퇴근을 한다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오랜만에 성문을 열어서 몇 가지를 슬쩍 내보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나에 대해서 털어놓고 나자 글 쓰는 것이 한결 편해졌다. 두루뭉술하게 쓰지 않고 정확한 상황을 묘사하고 정확한 표현을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더 이상 나에 대해 감춰야 하는 요소들이 줄어서 그렇기도 했고, 내 글이 조금이나마 더 진솔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기도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아주 방어적인 사람이라서,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혼자 글을 쓸 때에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나 자신과 화해하겠다는 목적으로 매일 한 편씩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했는데도, 실제로도 지금까지 19편의 에세이를 썼는데도, 아직도 내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내 글이 진솔하고 깊이 있는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괴로워진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아직 나 자신을 다 내려놓지는 못했나 보다. 나는 아직도 내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아직도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아직도 나를 나무라고 꾸짖고 있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오늘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대해서 털어놓은 것도 이런 시도의 일부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진솔하고 더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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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0일,

책상 의자에 앉아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ophia Hilma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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