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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21. 2023

[D-345] No One Is Alone

21번째 글

*뮤지컬 <숲 속으로(Into the Woods)>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틈만 나면 흥얼거리고 있는 노래가 하나 있다. 바로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숲 속으로(Into the Woods)>에 나오는 'No One Is Alone'이라는 노래이다. 원래도 좋아하는 노래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며칠 전부터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고 잊을 만하면 또 떠오르길 반복해서 할 수 없이 계속 흥얼거리는 중이다.


https://youtu.be/ITBjbdKetRE

'No One Is Alone' (from INTO THE WOODS)


'No One Is Alone'은 뮤지컬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2막 마지막 즈음에 나온다. 여러 인물들이 엮인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마지막 결말을 향해 갈 때쯤에. 이 노래가 나오기 전, 뮤지컬 속에서 인간들의 행동에 질려버린 마녀는 스스로 저주받아 사라지기를 선택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저주를 남긴다. 그 저주는 '너희들을 홀로 내버려 두겠다(I'm leaving you alone)'라는 내용이다. 마녀는 모든 인간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늘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욕심을 부리고 남 탓만 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 결과 모두가 홀로 고독하게 남게 될 거라고 예언한다.


Alone. 단순해 보이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저주이다. 하지만 이 저주는 실현되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위기에 맞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행히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No one is alone)'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라는 개념은 단순히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네 곁에 있어.'라는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개념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사회 안에서 한 개인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은 그 누구도 아닌 나 혼자서 내리는 것이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생긴 결과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릴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극중에서 잭은 자신의 소와 제빵사의 마법 콩을 바꾸기로 선택한다. 또 그 마법 콩에서 자라난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거인에게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훔쳐오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은 잭 개인이 내린 결정이지만, 그 결과 거인은 죽고 거인의 아내가 복수하러 내려와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만다. 잭의 선택이 왕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제빵사 부부, 빨간 망토, 신데렐라, 라푼젤과 왕자들 등 모든 캐릭터들의 모든 선택이 현재 이들이 맞닥뜨린 상황의 원인이다. 이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 이상 모든 사람들은 서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즉,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지금의 상황에 책임이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이기적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무책임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선택을 할 때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벌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다'라는 개념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 마녀는 '혼자가 되는 것'을 저주로 남겼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심한 저주일 수도 있다. 내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선택이 내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이런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피곤하고 끔찍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남아 있다. '혼자가 아니다'라는 개념의 축복 측면 말이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기에, 우리는 서로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고, 함께 힘을 모아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No one is alone. 내가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개념이다. 노래 가사를 기억하는 것만큼 깨달음을 기억하는 것이 쉬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 그만큼 쉬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결함 있고 불완전한 점 투성이인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노력하는 것뿐이다. 조심스럽게 선택을 내리려고 노력하고, 또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것뿐.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

2023년 1월 21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Doroth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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